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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1화 "중독" (8) |
"아버지. 저 아직 담배 못 피워요."
홍성만은 아버지를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버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담배를 내밀었다.
"피우라니까."
홍성만은 여전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쭈뼛거렸다.
"받아, 임마."
아버지가 짐짓 엄하게 말하는 바람에 홍성만은 얼떨결에 두 손으로 담배를 받았다.
"아직 한번도 안 피워봤어?"
"예."
기어 들어가는 홍성만의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마디 던졌다.
"이제 배우면 되잖아?"
그러면서 기어이 홍성만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었다. 홍성만이 손 사레를 치며 피하자 아버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담배 연기를 다시 길게 허공으로 내뿜었다.
"술은 어려운 사람한테 배워야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
"예."
홍성만이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 바람에 학우들과 학사주점에 몰려다니면서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일 때도 술과 담배 대신 안주만 집어먹는다고 학우들에게는 안주 킬러라는 핀잔과 함께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술하고 담배하고 다를 것도 없다. 언젠가는 피우게 될 담배라면 아버지한테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지금은 온 나라와 전 세계가 금연을 해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또 실제로 금연 운동의 확산으로 금연 구역, 금연 식당, 금연 빌딩들이 생겨나고 흡연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대단히 몰지각하거나 사회악이나 저지른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담배는 신사들의 기호품이었고 특히 예술가들에게는 정서와 낭만의 상징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홍성만은 성인이 되는 날 아버지에게서 첫 담배를 배웠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 느낀 건데 말이다. 담배처럼 좋은 친구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달라서 마찰을 빚는 경우가 있지만 담배는 무조건 희생을 하거든. 내가 기분이 좋아서 잘 어루만져주거나 화가 나서 함부로 대하거나 항상 변함이 없었다. 이 담배라는 친구를 잘 사귀어두면 힘이 들 때나 절망할 때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게다. 결코 널 배신하는 일도 없고 말이다. 지나친 흡연이야 건강에도 안 좋다고 하니 삼가야 할 테지만 잘 사귀고 잘 이용하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네게 가장 좋은 친구다. 알아듣겠니, 내 말?"
아버지는 그러면서 홍성만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담배를 권한 것이 결코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직이 고개를 끄떡였다 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내밀었다. 홍성만은 머리를 꾸벅하고는 두 손으로 담배를 받았다.
"피워봐라."
아버지가 따듯한 시선으로 말했다. 홍성만은 잠시 주저하다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버지는 `탁!` 하고 휘발유 냄새가 코를 찌르는 지포 라이터를 켜서 홍성만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홍성만은 담배를 빨아들였다. 담배 끝이 붉게 타오르더니 입안으로 한 움큼의 연기가 밀려들었다.
"에…켁!`
홍성만은 비명을 토해내면서 `？! ？!` 하고 마당으로 침을 뱉어냈다. 아버지가 껄껄 웃었다.
"다시 피워 봐. 처음이니까 너무 깊이 들여 마시지 말고."
홍성만은 고개를 돌리고 다시 담배를 물었다.
"이왕 피우는 담배라면 멋있게 피워. 남들 보기에도 좋게."
아버지는 마치 따라 해보라는 듯이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길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고는 코로 조금 연기를 내뿜는 것 같더니 다시 길게 늦봄의 밤하늘에 연기를 내뿜었다. 홍성만은 아버지가 하시는 대로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길게 연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아버지 흉내를 내며 허공에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들여 마신 양이 적었기에 내뿜는 연기도 아버지처럼 길고 멋있지는 않았다.
홍성만은 그때를 생각하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주인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홍성만은 잠시 망설이다가 라이터에서 떼어냈던 라벨을 라이터의 가스 분출구에 다시 붙여 원래의 자리에 꽂아두고 천 원을 집어 들고 나오다가 멈칫했다. 이 좁고 비탈진 골목길에서 도대체 몇 사람이나 찾아올지도 모를 이 깊은 밤 시간까지 몇 푼 남기자고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도 못하면서 가게를 열어놓고 앉아 있는 주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오늘도 수십만 원을 경마로 돈을 날리고 나서도 겨우 몇 백 원을 거슬러 받겠다고 서성이다가 그나마 사용한 라이터를 다시 놓아두고 천 원을 도로 집어가려 한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성만은 천 원짜리 하나를 가만히 내려놓고 조금 전에 사용했던 라이터를 다시 집어 들고 나왔다. 집 앞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벌써 담배는 다 타서 없어지고 겨우 필터 부분만 손가락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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