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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1화 "중독" (11) |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께 문제가 있는 거제."
김달오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소리나게 입맛을 다신다.
"하루 이틀 해보다가 관둘 수 있는 거이 경마라먼 까짓 거 괜찮겄지만 경마가 어디 그랴? 한번 경마에 빠져들먼 하루 이틀이 아니고 한평생을 경마 속에만 빠져서 살아가게 되니께 걱정이제."
김달오가 다시 어금니를 꽉 물어 보이자 조용철도 다시 발끈하며 맞받는다.
"그래, 성님 말대로 한평생을 경마하먼서 산다꼬 칩시다. 그기 뭐가 나쁜 기요? 경마는 내 좋아 혼자 즐기는 게임일 뿐인 기요. 남을 해치는 것도 아이고 남을 속이는 것도 아이요. 내가 추리하고 예상해서 선택한 경주마하고 기수들한테 베팅을 하는 머리싸움 게임이란 말이오. 안 그라요? 경마도 취미생활이요, 취미생활!"
조용철이 유달리 취미생활이라는 말에 과장되게 힘을 주어 보이자 김달오는 코웃음을 치며 되받았다.
"취미생활 좋아하네."
"취미생활…?"
홍성만도 자조 섞인 표정으로 취미생활이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되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취미생활이란 말은 벌써 5년 가까이 토요일과 일요일의 가정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의 인연을 다 뿌리치며 오로지 경마에만 목을 매왔던 자신에게 해왔던 자기변명이었다.
"애당초 시작해서는 안 되었던 취미생활이었어."
아내 오수연이 경마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내가 다른 취미가 뭐 있어? 산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낚시 같은 것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 주 스트레스 좀 풀려고 경마장 가는 게 뭐 그리 잘못이야? 산에 가든 낚시를 가든 돈 안 들어가나?"
결혼 초,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경마장에 드나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오수연이 힐책을 하자 홍성만은 그렇게 항변을 하곤 했다. 오수연은 그런 자신을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소리도 못 들었어요? 하루에 십만 원씩만 잃어도 한 달이면 팔십만 원이에요. 일년이면 천만 원이고. 실은 천만 원도 넘을 걸요? 그 돈이 어디 적은 돈이에요? 당신 한 달 수입이 얼마고 일년 수입이 얼만데 경마장에 일년에 천만 원도 넘는 돈을 갖다 바쳐요?"
"항상 다 잃어? 따는 때도 있지."
"어쩌다 한번은 따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결국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모두 잃고 마는 게 경마 아니에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당신이 경마로 잃은 돈이 여태 일, 이천만 원 뿐이었어요? 그리고 경마가 어디 조금씩만 베팅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점점 욕심이 생기고 또 그동안 잃은 돈을 한번에 다 찾아보겠다는 심리로 베팅 액수를 올리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차츰 잃는 돈의 액수가 커지고 결국 패가망신하고 알거지가 되는 거 아니에요?"
오수연의 예언 아닌 예언은 오래지 않아 사실로 증명되었다. 홍성만은 결혼 다음해부터 이년 가까운 세월을 대학 강사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그때의 생활비는 고스란히 아내가 책임져야만 했다. 결혼 초 아내와 맞벌이를 할 때도 변변치 못했던 대학 강사의 수입과 은행 융자를 안고 마련했던 아파트의 융자금을 변제해 나가느라 빠듯했던 생활비는 더욱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홍성만은 실직 상태에 있으면서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벌어지는 경마에만은 대단한 집착을 보였다.
"아내의 수입에만 의존할 수 없지. 일부분이라도 내가 책임져야지."
홍성만은 생활의 일부분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더욱 경마에 매달렸다. 수입이 없었기에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는 물론이고 소위 카드 깡에까지 의존하여 경마 자금을 마련해 베팅을 했고 그 돈들을 모두 잃는 바람에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아내 몰래 아내의 카드에도 손을 댔다가 탄로가 나서 큰 싸움을 벌였고 별거 위기를 맞기도 했다. 주위에서 얻어 쓴 크고 작은 빚들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경마하는 사람들 누구나가 그렇듯이 일주일 내내 궁색하게 지내다가도 경마일만 되면 어떻게든 몇 만원이라도 만들어내는 재주가 생겨났지만 그 돈들도 고스란히 마권 구매 창구 안으로 꼬박꼬박 쑤셔 넣기만 할 뿐이었다. 또 경마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그렇듯이 희한하게도 적은 액수로 베팅했을 때는 적중률이 매우 높았지만 베팅한 돈이 적다 보니 따는 돈도 그만큼 적었다. 그런 날은 화가 치밀었고 경마 자금이 적었던 것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어서 그 다음 주에는 갖은 수모를 다 겪으면서도 제법 많은 돈을 마련해서 경주마다 큰 액수의 베팅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날은 또 적중률이 형편없어서 가져간 돈을 고스란히 잃고 말았다. 마침내 경마로 잃은 돈들에 대한 후유증들이 하나씩 터져 나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아내와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아내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쪽은 당연히 홍성만이었다. 아내의 원성과 질책이 하나도 틀림없는 옳은 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자신도 경마로 잃은 돈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에게 항변할 전의(戰意)조차 없었다. 아내와의 전쟁은 매번 홍성만이 무차별 폭격을 받고 백기를 든 채 주저앉는 것으로 끝이 났다.
"경마를 택할 거예요? 나를 택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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