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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1화 "중독" (1) |
팬 VS 꾼 (1)
제1화 "중독" (1)
`땅!` 소리와 함께 게이트를 박차고 나선 12마리의 경주마들이 경주로를 향해 질주해 나가는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중계되기 시작하자, 장외지점의 객석 여기저기서는 벌써부터 환호와 질책의 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 한번 일 내봐라!"
"더 밀어라, 더!"
"저 자식 또 빼네!"
장외지점의 객석은 이제 첫 경주인데도 벌써 빈 자리가 보이지 않고, 미처 좌석 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루 동안 고생을 각오하며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발붙이고 빽빽한 사람들 틈 사이로 벽에 붙은 크고 작은 모니터들을 향해 시선을 던진 채 벌써부터 가슴을 부풀리고 있다.
대다수의 경마장 사람들은 갈기를 휘날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질주하는 경주마들의 모습에 매료되어 경마를 시작했다거나, 경주마들의 질주를 유도하고 제어하고 추진해내는 기수들의 역동적인 기승술에 매력을 느껴 경마에 빠져들었다거나, 하다못해 주변의 공기와 경관이 좋아 하루쯤 여유 있는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경마공원을 찾았다가 경마 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경마에 이력이 붙기 시작하고 승부욕이 커질수록 거리가 가깝고 출입하기 쉽다는 이유로 장외지점들을 찾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어쩌다 돈이라도 조금 따게 되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기분 좋아했다가, 경마를 레저가 아닌 갬블이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경주마의 질주하는 모습과 기수들의 역동적인 기승술 따위는 점차 관심에서 멀어지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는 경주 마번들에만 기대를 걸고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때부터는 경마가 기수의 경주가 아니라 경주마의 경주임이 분명한데도, 경주마의 능력과 관리 상태와 조교 과정보다도 조교사와 기수의 승부 의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온갖 정보들을 얻어내려 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오직 돈을 따는지, 잃는지에만 모든 결과를 집약시킨다. 이때가 경마 팬의 입장에서 경마 꾼의 입장으로 바뀌는 단계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칭 경마 팬에게든 아니면 경마 꾼에게든 오늘도 불확실성을 건 자신과의 전투가 다시 시작된다.
"좋은 아침!"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2층 객장으로 들어선 홍성만이 예상지 판매소 진열대에 가득 꽂혀 있는 예상지들 중에서 늘 자신이 구독해왔던 예상지 하나를 꺼내들자 판매소의 이승태는 습관처럼 다른 예상지 하나와 컴퓨터용 사인펜과 종합지를 꺼내 그에게 건네준다.
"남들은 예상지 한 권 가지고 잘도 따더구만. 난 왜 예상지 두 개에다 종합지까지 보고 하는데도 맨 날 돈 잃는 거야? 어디 단통으로만 팍팍 찍어주는 예상지 좀 없어?"
홍성만은 만 원짜리 하나를 건네주며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승태는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어 보인다.
"좋아! 오늘은 경마장 돈 다 긁어간다, 내가!"
홍성만은 스스로 멋쩍어 괜히 너스레를 떤다.
"공부 많이 해 오셨어요?"
이승태가 미소를 띠고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묻는다.
"경마가 어디 공부하는 대로 되나? 순전히 뺑뺑이 판 돌리는 거지."
홍성만은 거스름돈을 아무렇게나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예상지 앞장을 펼쳐보며 매점으로 걸음을 옮긴다. 매점을 운영하는 최석철이 홍성만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보인다.
"어이구! 일찍 나왔네?"
"한 주 휴장하는 동안 마사회에 아무 일 없나 알아보려고 일찍 나왔는데 말들 잘 뛰는 거 보니까 아무 일 없는 모양이네요?"
"홍성만 씨는 경마 한 주 쉬는 동안 무슨 재미로 살았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한 주 참느라 혼났습니다."
"휴가는 갔다 왔어?"
"야간경주에서 왕창 돈 좀 만들어 태평양 대서양 한 바퀴 돌 겁니다."
홍성만의 너스레에 최석철은 싱겁다는 듯 홍성만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해 보이며 웃는다.
"마사회 놈들 내 돈 그만큼 가져갔으면 인제 돌려줄 때도 됐는데 한 주 쉬면서까지 안 돌려주네? 지난주에 휴장만 아니었어도 마사회 아주 거덜 나게 하는 건데…오늘은 내가 기어이 다 찾아가고 말 겁니다. 혹시 여기 지점에 돈 떨어지는 건 아니겠죠?"
최석철은 찬 음료 캔 하나를 꺼내 홍성만에게 내밀며 한 마디 한다.
"지점에 돈 떨어질 리 없으니까 제발 잘 좀 해봐. 돈 가방 들어줄 사람 없으면 나라도 들어다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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