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칼럼-가랑비에 옷 젖는다

한국마사회는 5월부터 한시적으로 제주교차경주를 일일 1개에서 2개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5월 한 달 간 제주교차경주의 평균 매출은 28억3천만 원 정도다. 이중 25억 이상을 서울경마장이 메우고 있다. 서울경마장 한 개 경주 매출액에는 못 미치지만 만일 서울경마장 경주 수 축소에 따른 매출 하락을 메울 계산이었다면 목표치의 8할은 채우고 있는 셈이다.

마사회는 지난해 경주계획을 수립하면서 경주편성에 효율성을 높이고 박진감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경주마 가용자원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5월과 6월에 일일 경주 수를 축소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마사회 내부에서조차 매출액 하락에 대한 우려가 지적됐지만 경주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면서 양질의 경마 시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5월이 임박해 오자 불쑥 제주교차경주를 한 개 늘렸고 경마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베팅을 하고 있다.

일일 입장객을 15만 명으로 잡으면 1인 당 서울경마장 한 개 경주 평균 베팅액은 3만원 가량이고 제주경마는 2만 원 정도다. 상대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경마장처럼 방대한 자료도 제공되지 않고 과거경주모습도 다 보지 못했는데 어떤 근거로 제주교차경주에 베팅을 할까. 대부분 팬들은 각 전문지에 게재된 자료나 마사회 출마책자를 주로 참고한다고 한다. 어떨 땐 마명이나 배당만 보고 베팅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제주경마장 측에서 소위 소스라는 것을 받기도 한단다.

지난해 대부분의 전문지가 제주경마 자료를 게재하지 않았을 때도 매출액은 40억 원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이런 것들을 종합해 조금 과장한다면 교차경주에 베팅하는 서울 팬들은 빈약한 자료에 의지하거나 근거 없는 소스, 루머에 좌우돼 마번 찍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은 마사회가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과 더불어 경마팬을 보호하는 정책을 함께 구사해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마사회가 제주교차경주를 2개로 확대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얼마 전엔 안개가 자욱해 화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발주시각을 연장해 가며 억지로 교차 경주를 강행해 비난을 사기도 하지 않았나.

도대체 뭘 믿고 베팅하라는 것이며, 무슨 근거로 베팅을 하길래 한 경주에 30억, 40억씩 매출이 오르는지 놀라운 한편 답답하기도 하다. 돈을 잃어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모니터로 하루 한 두 개 경주 밖에 보지 못하는 제주경주는 도대체 뭔가. 한정된 경마팬의 호주머니를 하루라도 더 빨리 털 심산이 아니라면 제주교차경주의 확대 시행 같은 것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갬블에 참여해 내기를 하고 그들끼리 판돈을 나눠 갖는 게 경마의 구조다. 그런데 판돈에 걸맞지 않는 내기의 수준이나, 과도한 세금·각종 공제금 때문에 내기에 참여하는 사람이 점점 줄게되면 판을 벌린 사람도, 거기 끼어 든 사람도 서로 손해다. 그렇지 않아도 횟수가 늘면 늘수록 잃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게 갬블의 속성 아닌가.

적정한 선에서 판돈을 배분하고 내기의 수준을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의 구조대로라면 내기 참가자는 자릿세 대다 정작 내기할 돈은 바닥나게 되는 꼴이다.

그렇다면 판을 벌인 마사회가 내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돈을 덜 잃게끔, 근거 없이 잃지 않게끔, 불공평하게 잃지 않게끔, 그리고 잃어도 아깝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다.

돈을 덜 잃게 만든다는 것은 노력하고 연구하면 그만큼 이길 확률이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고, 근거 없이 잃지 않게끔 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결과가 나와야한다는 의미며, 불공평하게 잃지 않게끔 한다는 것은 경마의 공정한 룰이 지켜져야한다는 의미고, 잃어도 아깝지 않게끔 만든다는 것은 경주 자체를 관람하고 베팅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내기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은 경마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게 된다. 경마장 갈 돈이 없어 주말엔 아예 경마장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다.

마사회는 왜 스스로 제 고객을 보호하지 못하는가.

가랑비에 옷이 젖다 못해 이제 그 옷을 벗어버리려는 사람이 하나 둘 늘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걸까.
미봉책에 불과한 단기처방 대신 경마팬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가 뭔가 그 이유를 찾고 거기에서 근본적인 처방전을 마련하자.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