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장이 달라졌다.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어 가족과 함께 올 만하다는 소리도 제법 듣는다. 지난주 경마장에서 열린 콘서트에는 무려 2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경마가 끝났는데도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들어 경마로 쌓였던 그 날의 스트레스를 털어 버리는 모습이었다. 박자에 맞춰 같은 춤을 추며 열광하던 10대들의 모습은 TV에서나 봄직한 색다른 광경이기도 했다.

보기에도 민망한 수영복 패션쇼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고 경주 진행을 자꾸만 방해하는 소음 일색의 저급한 공연을 짜증내며 관람하지 않아도 돼서 정말 다행인 요즘이다.

또 얼마 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경마왕 선발 학력고사라는 행사가 열려 학구파 경마팬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자극했다. 세상에 어떤 도박이 눈속임이나 잔재주가 아닌 순수하게 공부를 하고 학력고사를 치른단 말인가. 경마란 끊임없이 기억해야하고 그 기억을 현재에 대입해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끄집어내야 하는 고도의 두뇌게임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참으로 기발하고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연초부터 경마팬 서비스를 부르짖던 마사회가 이렇듯 하나하나 카드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경마인구가 꾸준히 줄고 있다는 것과 경마매니아들의 실질적인 서비스 만족도가 기대 이하라는 점이다. 마사회가 이처럼 성의를 보이는데도 돌부처처럼 돌아앉아 꿈쩍도 않는 팬들의 심리는 뭘까.

“포장 바뀐다고 알맹이가 바뀌나” 한 경마팬은 이런 말을 한다.

‘포장’이란 요즘 이어지는 각종 행사를 말하고, ‘알맹이’란 경마시행을 의미한다.

마사회가 내놓을 수 있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경마 이외의 볼거리, 놀거리 제공보다 경마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기에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경마시행환경은 그를 둘러싼 외적 변화만큼이나 스스로 파격적 변신과 변화를 시도했는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경주의 질은 높아졌는가, 부정경마는 근절됐는가, 사설경마는 뿌리뽑았는가, 경주를 관람하고 마권을 구매하는 실질적인 서비스는 경마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가… 이런 것들이 정작 경마팬의 관심을 끌고 만족도를 높이는 실질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고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부정경마는 근절됐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도 부정행위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하루에도 간다는 말이 수십마리고 안 간다는 말이 또 그에 버금간다. 배당판은 25분 동안 수도 없이 이런 소스, 저런 소스를 담아내고 토해낸다. 한국경마에서 부정행위는 습관이 돼버린 듯 하다. 올해만 해도 두 명의 기수와 조교사, 그리고 마사회 직원까지 연루된 부정 사건이 터져 구속 수감되는 일까지 일어나지 않았나.
그래서, 사설경마는 뿌리뽑았을까?

적발사례는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 매출액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매출액 하락의 주범이 사설경마라더니 그도 아닌 것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애매한 경마중계만 20분 시차 방송한다고 하니 차라리 중계를 폐지하란 소리까지 나올 법하다.  
그래서, 경주 질은 나아졌을까?

나아지긴 했다는데 여전히 문제는 상존해있다. 경주박진감을 높이기 위해 이런 저런 고육책을 내놨지만 군체계가 지닌 모순은 여전하지 않던가. 한 조교사는 얼마 전 경주를 앞둔 자신의 경주마에 대해 “2군 경마대회에 출전할 건데 이번에 우승하면 승군한다”면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속을 알 길 없는 경마팬들이 십 수 억 원을 날렸음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래서, 마권을 구매하고 경주를 관람하는 환경은 나아졌을까?

구닥다리 구매상한선제도 여전하고 발매원을 비롯한 각 부문 종사자들의 불친절도 달라진 게 없다. 지점의 열악한 환경과 혼잡도는 ‘이래도 경마가 건전 레저인가’ 반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마사회 고객센터에는 이런 민원이 수도 없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마사회 서비스의 이런 저런 노력과 시도는 새로웠다. 하지만 다른 분야, 다른 정책도 여기에 보조를 맞춰야 비로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포장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알맹이가 진짜인 것이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