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나름대로 경마계에선 경마통으로 통하는 한 지인이 기자에게 “호스(horse)가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전적 의미를 모를 리 없을텐데 그는 이런 우문(愚問)을 했고 진의를 채 알아채기도 전에 “말(馬)”이라는 단순한 대답을 내놓은 기자였다.

그는 빙그레 웃더니 하나의 말이 경주마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원했던 답은 “경주마”였던 것이다.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을 한 꼴이다. 그리고 그는 호스맨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털어놓았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한 어린 망아지에게 경주마로서의 길을 알려주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그들의 혈통적 운명을 깨우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호스맨의 몫이다. 말과 경마에 대한 애정으로 폭넓게 경마산업에 기여하는, 풍부한 경험과 상식이 있는, 말 그대로 ‘전문가’가 바로 호스맨이다.

우리에게 이런 호스맨이 있는가. 있다면 누구라고 할 것인가. 또 서울경마장에 호스맨십은 살아있는가.

팬들은 종종 경마에 답이 어딨냐는 소릴 한다. 전문가가 어딨냐며 코웃음치기도 한다.

당장 지난주 갑작스럽게 빨라진 주파기록을 두고 납득될 만한 이유를 요구하는 팬들에게 다져진 주로가 문제라고 빈약하게 설명하려 든다면 매번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왜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못하는가 하는 비난만이 날아올 것이다.  

또, 바닥만 쳤던 부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능력마로 변신했을 때 이를 미리 눈치 채고 논리적으로 납득시킬 줄 아는 전문가가 몇이나 될까. 반대로 누가 봐도 출중한 능력마가 한 수 아래 상대와의 대결에서 어이없이 패배했을 때 ‘그 게 바로 경마’라는 허접한 변명대신 논리적으로 이유를 댈 수 있는 전문가는 몇이나 될 것인가.

생산자들은 싹수가 보이는 망아지는 아예 마방에서 꺼내놓지도 못한다고 푸념한다. 근육을 키우고 악벽을 순치하며 경주마로 다듬어야 하는 시기에 혹여 다칠 새라 마방에 꼭꼭 숨겨둔 채 얼른 팔려 서울경마장에 입사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좋은 자질을 갖춘 경주마라도 경주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서울경마장 말들은 단명하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경마가 시행되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그런 ‘고급’인력이 서울경마장엔 턱없이 부족하다. 인력의 중요성, 전문가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기에 지난 80여 년 간 등한시해왔던 결과다.
영화진흥공사에는 영화아카데미가 있다. 몇 해에 한 번씩 수강생을 뽑지만 선발 인원도 12명에 불과해 영화학도들에게는 그 문턱이 서울대 보다 높다고 한다. 문턱이 높은 대신 그들에게 주어지는 프리미엄은 수준 높은 교육과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되돌려진다.  

‘집으로’의 이정향,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 등은 영화아카데미가 배출한 인재들이고 영화계는 이들이 한국 영화계의 미래라고 자신한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수상하고 헐리웃 영화에 맞서 관객 1천만 명 시대를 열며 한국영화 부흥을 이끌어낸 영화계의 결실 뒤에는 이처럼 전문인력의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육성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경마아카데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경마시행이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경주마 사양관리, 기승, 경주계획, 편성, 재결, 핸디캡 등 각 부문을 특성화한다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원로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어느 조직, 어떤 사회든 원로 집단은 있게 마련인데 경마계 만큼 원로가 푸대접을 받는 곳도 없다. 한 평생을 기수로, 관리사로, 조교사로 지내다 은퇴를 해야 하는 원로들은 자신이 수십년 간 몸으로 체득한 아까운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할 길이 없다며 안타까워하지만 정작 이는 경마계의 막대한 손실이기도 하다.

팬들이 착순판정을 불신하고, 경주편성에 불만을 품고, 심의 내용에 문제제기하고, 전문가를 믿지 않는 것은 경마종사자들의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쟁이’를 키워내자. ‘꾼’을 만들어내자.

당신은 호스맨인가?

기자에게도 갈 길이 멀기만 한 질문이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