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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 VS 꾼 - 제3화 "함정" (114) |
“몇 년을 무위도식하면서 지내다 보니 여기저기 빚이 많아졌습니다. 그것들 을 정리하려면 다시 그림에 열중해서 부지런히 그려내야 하는데... 그려낼 게 보이지도 않고... 어쩌다 영감이 떠올라 마음을 다져먹고 붓을 들어도 손이 따라가지 못하니...”
정교수가 다시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은 여전히 모니터로 시선을 향한 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정교수와 봉주도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에서는 막 5경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발주대를 뛰쳐나간 경주마들은 어느 경주에서나 그래왔듯이 잠시 동안의 선행마들의 자리 잡기 몸싸움이 벌어지고는 이내 선행마를 필두로 길게 꼬리를 물고 2열 종대형으로 경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복승식최저배당이 1.7인 경주답게 선행으로 뛰쳐나온 두 마리의 입상유력마들은 다른 경주마들과 거리를 벌여가며 4코너까지 질주를 해나갔고 4코너를 돌아 직선주로에 들어서면서는 뒤따르는 경주마들과 더욱 거리를 벌여가며 둘만의 우승다툼을 벌여나갔다. 다른 경주마들은 앞서 달아나는 두 마리의 경주마들과는 승부도 벌여보지 못한 채 승부욕을 상실한 걸음으로 한참 뒤쳐져서 무리지어 달리고만 있었다.
“게임이 안 되는구만!”
봉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봉주의 말처럼 경주는 그렇게 두 마리의 코차이 우승각축만으로 끝이 났다. 두 마리의 경주마가 결승선을 통과한 한참 후에야 무리를 지어 달려오던 다른 경주마들이 우르르 결승선을 통과해 갔다.
“3등이 몇 번이야?”
“6번인데 6번 들어오면 뭐해? 연식배당이라고 겨우 1.8하고 2.0인데 불확실한 연식 살 바에야 확실한 대끼리에 몽땅 털어 넣는 게 났지.”
“개자식들 무슨 편성을 이따우로 해놨어?”
“그러니까 베팅헌 돈들이 저거밖에 안되지.”
“그래. 맨 날 요따우경주만 해라. 돈 많은 놈들만 큰돈 팡팡 때려 넣어서 돈 불리게 허고 대끼리부러지기만 바라고 요행수나 바라봤던 개미들은 몽땅 알거지들 되고 해서 아예 경마허는 인간들이 사라져버리게.”
여기저기서 푸념들이 터져 나왔다. 종원은 예상지를 펼쳤다. 정교수가 흘낏 종원을 보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한 마리 잘 찾아주십시오.”
하고는
“마감 10분전까지는 베팅할 수 있으니까 시간은 충분합니다.”
했다. 종원은 아무 대답도 않고 페이지를 넘겨 예상지의 6경주난을 펼쳤다. 6경주는 모두 11마리가 출주한 1400M 경주였다. 오전에 정교수가 10번말에 대한 쏘스를 받았다며 한번 검토해봐 달라고 했을 때, 예상지에 수록된 6경주 출주마들의 자료들은 한 눈에 봐도 금세 우열이 분별되는 경주편성이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뻔한 경주 같죠?”
정교수가 물었을 때 종원은
“그러네요.”
하고 대답했었다. 정교수가
“10번... 되겠습니까?”
하며 기대감을 가득한 얼굴로 다시 묻자 종원은
“글쎄요...”
하고 말끝을 흐렸었다. 정교수가 다시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조교는 엄청 시켰거든요.”
하는데도 종원은
“강조교를 시켰다고 해서 말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순 없을 텐데요.”
했었다. 정교수가 다시
“1400입니다. 1800까지 뛰었던 말입니다.”
하자 종원은 여전히 회의적인 얼굴로
“단거리와 장거리의 중간이라 말의 능력비교가 제일 어려운 거리죠.”
했었다. 정교수는 종원의 회의적인 표정이 신경이 쓰이면서도 다시
“워낙 선행력 좋은 말들이 많아져서 요즘엔 선행을 나서지는 못하지만 예전엔 순발력도 있었던 말입니다.”
했었다.
“이번 편성에도 선행마들이 많은데요? 더욱이 자리도 너무 바깥이라.”
종원이 여전히 회의적인 표정을 지어보이자 정교수는 내심으로는 맥이 빠지면서도
“두세 번째만 따라붙어도 끝까지 버틸 힘은 있는 놈입니다.”
하며 일말의 기대감을 놓지 않았었다. 종원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모니터의 화면은 어느새 6경주에 출주할 경주마들이 예시장을 돌고 있는 모습과 6경주의 배당현황으로 바뀌어 있었다. 종원은 단식과 복승식과 쌍승식의 배당을 잠시 살펴보다가
“나머지 하나도 똑 같은 액수로 사실 겁니까?”
하고 물었다.
“예. 천요.”
정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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