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견’이라고 하면 과찬일까?
그러나 ‘대견’의 휘어진 허리를 보면서 빠른 세월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경주마로서 7년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93년 호주 깊은 산골 목장에서 ‘대견’을 처음 만났을 때, 좋은 명마가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러나 도입후 나의 소속마방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훈련이 시작되면서 망가졌던 몸매가 다듬어지고 엄청난 power, 순발력, 지구력을 겸비한 막강한 명마를 예고하며 경주로에 출전 체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93년 9월 경주로에 데뷔하면서 명마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 승승장구하며 전승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승률이 높아질수록 ‘대견’의 기세는 하늘 높은줄 몰랐다. 그러나 높고 높은 장벽과 태산과 같은 험난한 고난의 길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화려했던 그 시절 ‘대견’의 명예는 무거운 등짐 밑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등짐을 지고 허우적 거리며 뛸때는 차마 눈을 감아 버린적도 여러번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경마대회를 4번이나 석권하고 94년 최우수마로 뽑혔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견’이니까 가능한 기록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과중한 부담중량으로 경주를 치르고난후 심한 마필은 3-4일 동안은 식욕이 뒤떨어지고 틈나는대로 누워있고 끙끙대며 고통을 호소하는 마필도 있다. 또 몇개월씩 휴양을해야 하거나 심하게는 경주로를 떠나는 경주마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란 무엇인가? 피와 땀을 흘려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그 보상을 쟁취하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핸디캡이라는 제도에 의해 저지되고 무산된다면 우리의 노력도 포기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마의 질은 물론 팬들의 관심, 베팅 의욕 등 모든 것이 상실되고 경마의 기대감과 흥미는 더더욱 감소되리라 본다. 타 마필에 우승 기회를 주고 박진감과 스릴을 느끼게하며 베팅에 묘미를 준다는 미명하에 우리(마주,조교사,기수,관리사)들은 처참하게 멍들어 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이 경주마 자원의 순환이 원활치 못한 여건속에서 핸디캡이라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조교사로서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 제도는 매우 한정적인 범위에서 합리적으로 행사되어야하며 특히 경주마의 관리자인 우리 조교사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적용이어야 할 것이다.
다소의 주관적 견해를 전제하면서 현행 우리의 핸디캡 적용은 너무 행정 편위주의적이 아닌가 생각되며 특히 조교사의 불만도 불만이지만 경마 고객들을 위해서도 좀 더 사려깊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건대 조교사들이 질문과 답변을 요구했을 때, 과학적인 근거제시와 자세한 설명으로 이해는 못시킬 망정 “당신말이 잘 뛰니까”, “핸디캡에 안쓰면 되잖아”하는 식의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발언은 삼가했으면 하는 바램이며 좀더 섬세하고 과학적이고 믿음으로 신뢰할 수 있는 핸디캡퍼의 마음 가짐이 아쉽게 생각된다. 팬서비스 차원만 생각하는 고육지책인 핸디캡 적용은 한시 바삐 사라져야 한국 경마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주와 상의하여 금년중 적당한 시기에 ‘대견’의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경주마로서 활동하기에는 다소 연령이 부담스럽고, 실제로 전성기의 기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직도 순발력과 지구력 면을 볼 때, 현역으로 더 뛰어도 손색은 없다. 그럼에도 은퇴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대견’이 이제는 더이상 부담중량이라는 멍애를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가 참으로 안타깝기 때문이다.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원리는 한편 잔인하면서 한편 아름다운 대자연의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하루빨리 핸디캡이라는 인위적 조정이 아닌 한때의 강자가 신예마에게 자연스럽게, 또한 명예롭게 자리를 물려줄 수 있는 자연의 법칙으로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우리 경마의 질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지름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이제는 명마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길줄 아는 팬들에게 맡기는 성숙함을 보여줄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작 성 자 : 최혜식 조교사 violet@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