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 의해 주도되던 경마의 주도권은 해방과 더불어 순수한 한국인에 의해 경마를 시행하게 되었다. 광복 후의 경마는 해방의 혼란과 6.25전쟁 등의 시련을 겪으며 오랫동안 고전했으나 70년대 들어 국력의 비약적인 신장과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에 따라 레저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경마도 급성장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한국경마는 89년 9월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최고의 도약기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한국경마는 명실공히 최고의 레저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매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99년 한해 입장객수 1천1만2천91명을 기록, 모든 인기스포츠를 제치고 처음으로 입장객수가 1천만명을 넘는 기염을 토했고, 매출액은 3조1천 7백31억원에 달했다. 한국경마는 수도권 일원에 국한되었던 지역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99년 7월 대전지점에 이어 2000년 4월 광주지점이 개장되었고 부산과 대구에도 지점이 생기면서 경마지방화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부산경남경마공원이개정되어, 경마산업 전국화의 틀을 갖추었다.

 

마권 매출액만도 7조원을 넘어 섰고 마필 생산 육성 매매, 정보제공 등 각종 부대 산업을 합칠 경우 연간 약 20조원의 시장규모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