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2편을 올립니다.......(번뇌성주님의 글을 경문팬을 위해 퍼왓습니다.)

**************************************************************

희미한 조명등....
음악을 타고 흐르는 어느 여류가수의 육성을 타고 시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우리들이 폭설을 뚫고 도착한 50여 평의 카페에 잔잔한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등대에...

불이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차가운 바깥 기운과는 달리...
카페의 따뜻한 온기와 함께 흘러드는 여류가수의 배경 음악을 담은 낭독시는...
경마로 황폐해진 내 가슴에 뜻 모를 의미를 담은 체 사무치도록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들고....
경마를...경마를....

그 당시....

순간적으로 내 의식을 타고 뒤바뀌어 버리는 시 자락을 보더라도 천상 나는 경마에 미친 갱꾼일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감상에 젖어 있는 나의 시선을 타고...
은밀한 밀담을 나누기 좋도록 칸이 막아진 한 곳을 향해 하얀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하나의 밀실로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
우리들 앞에 더러운 일이 벌어졌다.
주인 여자라는 것이...
손님이 왔는데도 힐끗 비웃는 시선으로 우리들을 한 번 바라보았을 뿐 찬바람을 만들며 홀의 한 편으로 모습을 감추어버린 것이다.

(씨팔...!)
(우리들은 손님이 아닌가!)

나도 모른 욕설이 뭉개진 자존심을 타고 흘렀다.

(좃 같이 저 여자...!)
(마치 우리들을 인간 말종을 대하는 듯한 눈빛이야!)
(이미 우리가 쏘스를 구걸하러 온 것을 알고 있는 거야...!)
(손님으로서 대접 받을 가치도 없는 족속들이 되어 있느느 거라구...!)
(씨팔..우리 갱꾼들은 어디를 가든....!)

무참히 뭉개진 내 자존심을 비웃어 버리듯...
여류가수의 목마와 숙녀는 더럽게 변한 내 기분으로 비참한 수채화를 그리며 흘러들었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한 그 무엇이 무서워서 떠나는 것일까

더러워진 기분을 어떻게 추스려 볼 수없어 억울한 일을 당한 어린애처럼 목젖이 뜨거워지도록 분해 있을 때....
일단의 사람들이 홀의 한 밀실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속에는 하얀이 섞여 있었으며....
그들을 향한 형의 두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그리고....
커진 두 눈에 감격과 환희가 화려한 빛살의 물결을 만들며 넘쳐흘렀다.
그것은 비단 형 뿐 아니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밀실에서 쏟아져 나와...
우리 두 사람의 지나치면서 바람처럼 카페를 빠져 나가고 있는 사람들 중 두 사람의 얼굴이 확인된 순간부터였다.

두 사람....

대상경주 우승을 했을 때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종종 보았던 낮익은 얼굴....
사람들이 조교사라고 부르는.....
우리 갱꾼들에게는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두 사람의 존재를 명확하게 확인을 한 것이다.

하얀은 우리들과 함께 남고...
조교사 일행과 함께 사라지던 말쑥한 차림의 40대 사내가 순간적으로 하얀을 향해 몸을 돌리며 빙긋 웃을 흘렸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잘되 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손동작을 남기며 사라졌다.

아아....
이 여자가 신의 영역에 있다고 믿었던 조교사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다니...
친분을 가지고 이렇듯 은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니....!

그때부터 하얀은 내게 여자가 아니었다.
쏘스꾼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사는 영역의 여자도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발길도 허용하지 않는 설원에 핀 한 송이 고고한 꽃이었으며...
감히 나 같은 갱꾼은 올려다 볼 수조차 없는 지고지순한 꽃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하루가 죽음의 강을 거너는 것처럼 힘든 하루를 살고 있는 나를 구원해 줄 절대적인 쏘스를 그녀가 가지고 있으니까...

얼어붙은 내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하얀의 얼음 같은 음성이 흘렀다.

[그만 가시죠...]

여자는 바람을 만들며 문을 나섰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형과 나는 절대적인 구원의 손길에 대한 감동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밝히지만...
우리 갱꾼들은 이렇듯 쏘스에 약하다.
아니 굶주려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다만 그 쏘스란 것을 믿을 수 없고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애써 부인하고 있을 뿐...
그 당시...
나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흥분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으리라.

밖은 여전히 눈발이 거셌다.
나의 애마인 코란도 훼밀리는 눈 속을 잘도 헤치고 달렸다.
흥분하여 떨고 있는 내 영혼으로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처럼 여류가수의 시 가락이 맴돌았다.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형과 나는 완전히 저 자세가 되어 그녀를 받들었다.

잘못하다간 쏘스가 날아간다.
그녀의 비위를 건드리면 희망은 다시 끝장이 되고 만다.

형과 나는 자존심도 없는 사내였으며...
나이도 없었고....남녀의 성비도 없었다...
내 인생 최고로 호화스러운 곳에서 저녁을 대접하고....
쇼팽의 선율이 흐르는 곳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실 때까지도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적막의 바탕색 위에 인형의 무심함을 담은 눈동자만이....
이따금씩 나를 노려보듯 바라보다가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곤 할 뿐이었다.
마침내 형이 가슴에 억눌러 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하,하얀...쏘,쏘스 받았능가......?]

하얀의 적막한 시선이 형의 주름진 얼굴에 머물렀다.

[훗...쏘스...어르신은 쏘스란 것을 믿어요...?]
[안 믿어...그러나 하얀의 쏘스는 믿제...콱 믿어 불제...앙그냐...좃밥...]

나는 하얀이 만족할 정도로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한껏 웃음을 만들었다.
그녀가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아부를 담아서....

형의 얼굴을 떠난 하얀의 시선이 내 얼굴에 서늘한 바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여자다운 기운이 피어올랐다.

[훗...귀여운데가 있는 남자네...]

하얀의 몆 마디 말에 나는 그만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귀엽다고 한다...!)
(내가 귀엽다고...아아...하얀은 내게 관심이 있다...!)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 때의 나....
그녀의 눈에 적막이 풀어지고 인간의 온기를 담은 눈빛이 나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쏘스란 말이죠...]
[....?]
[직접 받은 것...]
[....?]
[건너 건너서 온 것....]
[....]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죠....]

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물을 타서 건너 온 쏘스들은 개쏘스들이여...]
[...]
[이렇게 하얀 같은 쏘스가 진짜여....]
[....]
[개쏘스 날리는 좃같은 새끼덜....!]

그동안 이런저런 쏘스에 한 살림 날린 형의 한 베인 음성이었다.
그러나 하얀은 형의 말 따위는 애초에 관심도 없다는 듯 오로지 나를 향해 눈빛을 고정시켰다.
숨이 막힐정도로 감동스러운 눈빛을....
그리고 말....

[물론 제가 흘리는 쏘스는 그 어떤 쏘스 보다 정확하죠...]
[....]
[그러나....]
(그러나...!?)

심중에서 그녀의 말 끝을 따르는 내 영혼은 조바심이 났다.
하얀의 음성이 조바심이 난 내 귀에 흘러들었다.

[마필에도 복병이 있고...기수도 복병이 있고...조교사도...마주도 복병들이 있듯이...]
[.....]
[우리들 쏘스에도 복병이 도사리고 있죠....]

나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직시하는 그녀의 눈빛에 메달렸다.

[쏘스에도 복병이...?]

놀란 나를 향한 그녀의 인간적인 눈빛이 다시 인형의 무심함을 담았다.
그리고....바람을 만들며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밖은 이미 깜깜했고...
거리의 네온들이 어둠을 밀치며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는 눈발에 창백한 행렬을 만들고 있었다....
창백한 눈의 행렬 속에 그녀의 음성이 걸렸다.

[일테면 나의 쏘스에도 변수가 있다는 뜻이죠....]
[...!?]
[그 변수들을 절대적으로 줄였을 때에야 비로소 쏘스는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되죠.]
[...!?]
[베터들이 베팅을 하는 마번에 절대적으로 변수를 줄였을 때 성공 하듯이...]

그 순간,형의 놀란 음성이 눈의 행렬을 꿰뚫었다.

[엥이...쏘스에도 변수가 있다는 야그가 대체 뭣이여...?]

적막처럼 가라앉은 하얀의 음성이 흘렀다.

[그러니까 확인하셔야죠....]
[...!?]
[절대적으로 변수를 줄여 가는 진정한 쏘스의 고행을...]

그녀와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청개천의 어느 대형 스탠드빠였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많았다.
하얀은 중앙 무대와 떨어진 한 곳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가 왜 이 곳을 와야 했는지 형과 나는 불안 마음으로 그녀가 자리한 테이블에 불안한 마음으로 몸을 내렸다.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 인순이의 현란한 몸동작을 향해 내 정욕의 시선이 머물렀을 때....
하얀의 음성이 내 귀를 찔렀다.

[흥..속물들....]
[...!]
[모두가 발정난 숫캐 같아!]

나는 자신도 모르게 붉어진 얼굴로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무대를 휘어잡고 있는 가수로부터 눈길을 돌렸다.

하얀이 적막의 강을 건넌 황량한 눈빛을 내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으로부터 전류가 일어나고 있었다.
적막과 황량이 섞인 전류....
그 전류 속 어딘가로부터 적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적의가 아니라 살인의 기운을 담은 섬뜩한 적의였다.

[그러니까...남자들은 다 암내를 맞고 킁킁대는 더러운 숫캐들이라는 거죠...]

단순한 적의가 아니라...
소름이 끼치는 듯한 한을 머금은 듯한 적의가 곧바로 내 영혼에 옮겨져 나를 감전시켰다.

(이 여자....!)
(이 여자는 한을 지녔다....!)
(살인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남자에 대한...애증에 대한...!)

이때,나를 감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형의 놀란 음성이 내 귀를 때렸다.

[하,하얀....!]
[저 남자는 아까 봤던 그 남자 아니여...!]

형의 시선을 따라 내 눈은 빛처러 옮겨졌다.
아아...바로 옆 테이블....
안양이 어느 카페에서 보았던 조교사들과 함께 사라졌던 그 문제의 남자....

불빛 아래 그의 말쑥한 차림이 조금은 멋이라는 일감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내 시선이 그 사내와 함께 자리를 같이한 두 사람을 향했을 때 내 두 눈은 또 다시 강렬한 전류를 맞고 말았다.

분명히....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부정경마로 연류 되어 기수 생활을 그만 둔 두 명의 기수가 그 남자와 함께 술잔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기수가 그 남자 앞에서 극히 저 자세라는 것이다.
형의 찬란한 희망을 담은 음성이 튀어 나왔다.

[기수들이그만...기,기수들이여...!]

이때,하얀이 바람처럼 몸을 일으켰다.
[춤 한 번 춰요....]
나는 두방망이질 치며 솟추치고 있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며 그녀를 따랐다.

대부분 잡놈들....
그러니까 잡놈으로써의 자격증을 가지려면 육박자는 필수요건이다.
나 또한 잡놈 부류에서는 뒤질바가 없는 놈....
부르스 곡을 따라 무대를 돌고 있을 때....
그녀의 차가운 겉 모습과는 달리 뜨거운 입김이 내 귀에 부어졌다.

[쏘스에 있어서 복병은 말이죠...]
[....!]
[마주의 승부의지...조교사의 승부의지...기수의 승부의지...]
[....!]
[마구간에서 말밥을 주고 말똥을 치우는 사람들의 승부의지...]
[....!]
[담당 수의사들...]
[....!]
[그 외에도 많죠...쏘스에 있어서 복병은 곧 변수....]
[....!]
[진정한 쏘스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완벽히 이런 변수들을 없애가야 하죠...]
[....!]
[우린 지금 다섯 번째 변수를 없애고 있는 중이죠....]
[....!]
[분위기로 봐서는 변수를 제거한 모양이예요...분위기가 좋아요...]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차가운 이성을 지닐 수가 없었다.

아아...쏘스는....
그래...진정한 쏘스는 바로 이런거야....
마주가 원해도 조교사가 틀면 그뿐....
조교사나 마주가 원해도 기수가 틀면 그 뿐....
아무리 그들이 원해도 마필 관리자가 장난을 부리면 그 또한 그 뿐....

내가 너무나도 완벽한 쏘스 거듭나기에 경악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나의 머리를 끌어 당겼다.
내 얼굴이 그녀의 젖무덤에 파묻히는 꼴이 되고....
나는 또다시 숨이 막히는 유혹으로 온 몸을 벌벌 떨었다.

쏘스라는 강렬한 희망과....
설원의 꽃처럼 침범을 거부하는 아름다운 여자의 은밀한 관심...
나는 그야말로 이중의 혼란으로 제 정신일 수 없었다.

그 날....

그렇게 내 어리석음은 끝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내 인생의 한토막이 부러지고 있었다.
그녀와...그 남자에게....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단어를 던지면서...

다음에 또....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