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검빛 당시 시인님이요,

지금 예스위크에서 좋은 공간을 주시는 "번뇌성주님"작입니다.

휴장기를 맞아 경문 팬들을 위해 허락없이 글을 훔쳐왔습니다. 

*****************************************************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을 모르게 하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는 목이 메이는 기적...

집에는 쌀도 없는 경마꾼이...
모든 비애와 절망을 하늘을 보며 던져내고...

그래도 헐벗고 메마른 한줄기 눈물은 남아....
삶과 죽음의 외접선을 그으며 서러운 유형의 절규를 터뜨린다.

---그래!
내 인생 무엇이 잘못이었는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여 삶의 외인지대로 밀려나야 하는가!

---아아!
인생이란 이름의 도깨비!

---아아!
경마란 이름의 도깨비!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그 해 겨울....
유독히도 눈이 많았던 그 해 겨울....

희미한 불빛의 커피숍에서 나는 한 사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는 흰눈이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내리고 있는데....
경마란 이름의 도깨비를 만나고부터 함박눈 내리는 날의 낭만 따위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체 나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경마에 모든 인생을 받쳐버린 사람이었다.
경마에 아내를 받쳤고....
경마에 가정을 받쳤으며...
경마에 자식들마저 바쳐버린....
말하자면 경마에 미친 인간이었으며....
지금은 쏘스꾼이 된 인간이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형이기도 했었다.

아니...
형이라기보다는 나 보다는 십 칠 팔세가 많은 형님도 한참 형님이 될 사람이었으나...
나로 하여금 한사코 형이라고 불러주기를 원했으므로 억지춘향 격으로 형이라고 불러주는 사이었다.

바로 이 형을 통해 나는 경마란 불행의 신을 만났으며...
제 살을 햝고 햝으면서 피를 내고 피를 뱉어내게 된 사람이다.
통장의 돈은 이미 바닥이 난지 오래고...
카드란 카드들은 신용불량의 기로에 서 있었으며....
주변의 친지들로부터 너무도 많은 빗을 지고 있는 사면초과의 상태였다.

우리 슬픈 갱꾼들이 그렇듯이....
이런 상태가 되면 더욱 이성을 잃고 경마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너무나도 당연히...
숨막이는 곤경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로지 경마로 한구라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어리석은 희망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가 갱꾼으로 소문이 난 우리들에게 희망의 끈을 풀어 주겠는가!

그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처지가 절박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경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슬픈 우리들 일 수밖에 없는 것...

각설하고....
바로 그 형이 다가 올 마요일 한구라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아니 여자를 데리고 올테니까 마요일에 쏠 실탄을 어떻게 해서든 마련해 보라는 것이다.
나는 이미 형을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형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고 있는터....

그러나...
그 날 형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비장했다.
마치 전쟁터를 향하면서 완전무장을 한 전사의 비장함이...
밭고랑처럼 주름이 진 얼굴에 섬뜩한 검광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이번은 틀림없어!]
[한 방 치고 끝내자!]
[이 놈의 지긋지그한 마판!]

나 또한 달리 뾰죽한 수가 없는 기호지세라 은근히 기대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아아...한구라..
이 숨가쁜 절망의 지대를 벗어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통로...

나는 형의 권유에 못이긴 척 따라 나섰고....
과천의 한 커피숍에서 나만 남겨 놓고...
바야흐로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려는 여자를 만나러 나간 것이다.

선팅이 된 창문 너머로 눈은 저리도 쏟아지는데....
눈 쌓인 도로에 발자국을 남기고 간 형은...
그 발자국에 눈이 다시 쌓여서 그 흔적을 지워버릴 때까지도 나타날 줄 모르고 있었다.

---씨팔!

내 입에서 점점 욕지꺼기가 섞이고 그 강도가 진하게 변하기 시작할 즈음....
커피숍의 문이 열렸고....
온 몸에 수북한 눈을 털면서 형이 나타났다.

[좆같이 눈도 많이 와부네 거...]

잡놈으로 살아 온 잡놈의 욕지꺼리가 내 귀를 때렸을 순간....
나의 적막한 눈동자는 형의 뒤를 따라고 오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 자력처럼 달라붙었다.

여자....
그 여자를 본 순간....
내 가슴 쌓였던 기다림에 대한 분노나 욕설은 순간적으로 소멸이 되고 말았다.

여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여자는 수 백 만원이 호가하는 밍크코트를 입었으며....
163정도의 늘씬한 키에 밍크코트에 얹힌 눈 보다 더 희고 깨끗한 피부를 지닌 여자....
얼굴에 박힌 이목구비가...
그 여자가 가져야만 가장 적절해 보이는 모습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존나게 눈이 많이 와부네 씨발...]

형이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여자에게 앉기를 권하며 내 뱉은 반복된 음성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이 새끼는 내 동생뻘 되는 놈이고...경마에 좆밥 되분 놈이여...]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있던 나는 애써 흩어진 이성을 곧추 세웠다.

나와 여자의 시선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바람처럼 만났다.

그 맑고 아름다운 얼굴에 박힌 여자의 두 눈은 인형의 무심함이....
그 무심함 위에다...
적막이란 이름의 바탕색을 그리며 나의 놀란 눈빛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좆만한 새끼...완전히 가부렀네 이거...]
[새끼가 그래도 좆대가리 차고 있다고 여자는 알아 보냐.]
[하기사 누가 하얀 같은 여자를 보고 뻑이 안가 불것냐?]

---하얀...!

나는 그 때 하얀이 그 여자의 이름인줄 알았다.
그러나 후일...
그 하얀이라는 것이 그녀의 이름이 아니라 쏘스꾼들 사이에서 불려지는 별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녀는 하얀이 되기도 했고...겨울이 되기도 했으며...가을이 되기도 했고....
여름이 되기도 했으며...봄이기도 했었다...
무엇으로 불려지느냐 하는 것은 완전히 그녀의 자유였다.

하여튼 내가 그녀의 분위기에 형의 말처럼 뻑이 가 있을 떄....
여자의 입에서 간단히 얘기하고 끝내자는 식의 권태로운 음성이 흘렀다.

[하루 얼마쯤 배팅하시죠?]

권태로움 속에 차가운 감상을 지닌 여자의 음성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예....]

내가 아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말끝을 흐리자....
여자는 짜증난 음성으로 바로 나를 내질렀다.

[하루 배팅자금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어요?]
[듣지 못했어요?]

여자의 추운 감상의 물결을 만드는 음성은 나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한 자존심을 하는 나는 자존심의 칼날을 세웠다.

(씨팔...좆같이....!)
(이 따위 여자...!)
(쏘스나 팔려고 온 여자...!)

그러나...
날을 세운 자존심에 대한 나의 의지와는 달리 하루 배팅 자금을 공개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만큼 여자의 분위기는 나를 주눅이 들게 하였다.

---삼백만원 정도.

그러나 내 입술에서 그 말은 흘러나오지 못했다.
너무도 다급하고 절박한 형의 눈길이 애절하게 내 눈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우면서 너무도 애절하게 매달리는 형의 눈빛....
나는 나도 모르게 삼백만원이라는 말 대신에 0을 하나 더 붙인 배팅 자금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삼천만원입니다.]

이 말을 뱉어버린 나는 후회가 물살처럼 내 가슴을 타기 시작했다.

(삼천만원이라니!)
(이 미친놈이...!)

그러나 똑바로 나를 향한 체 적막과도 같은 눈빛을 던지는 그녀의 얼굴에 무시가 걸렸다.
고작 그 정도냐는...
그것 밖에 안되냐는...

(썅...!)

배팅자금을 더 부풀려 버릴 것 그랬다는 짤막한 후회와 오기가 다시 내 가슴에서 급류를 탈 즈음.....
비웃음을 담은 적막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던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가시죠....]
[어디를....?]
[믿을 만한 정보라는 것을 알지도 않은 채 그 돈을 쏘아 부울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인가요?]
[....!]
[삼천만원 쯤은 아무렇지 않게 내버릴 정도로 돈이 많아요?]

형이 반색을 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아따 하얀...그래도 차는 한 잔 마시고 가야 안 쓰것는가 잉...]

그러나 그녀는 이미 차가운 겨울바람을 만들며 멀어지고 있었다.
형이 다급해졌다.

[존나게 승질 드럽네 거...]

그러나 형의 얼굴은 희색만면이었다.
나를 향해 득의 표정을 지었다.

이젠 끝났다는...
이제 우리는 성공했다는 희망이 가을 들녘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넘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면서 형을....
그 여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아...그러나 그것이....
나로 하여금 삼천만원이라는 돈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않되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맞게 할 줄이야!
내 두 눈이 이성을 잃고 쥐새끼보다 초라한 탐욕으로 울게 될 줄이야!

너무 길었습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기상천외한 쏘스를 날리는 여자의 이야기를 이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