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은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건물답게 구석구석이 떨어져나가고 장식들이 벗겨져 흉물스러워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종원이 매캐한 냄새를 풍겨내는 콘크리트 바닥의 복도를 가로질러 영숙이 알려준 방 호수 앞에 이르러 흘낏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직이 노크를 했다. 커튼마저 드리워진 어두운 방안에 있던 규태는 노크소리가 들리자 긴장된 눈빛으로 문 곁에 바싹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영숙과 약속된 숫자의 신호음이 들려온 후
"나에요. 종원이에요."
하는 종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긴장 된 표정을 풀고 규태가 걸어 잠군 방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문 앞에 종원이 서 있었다. 둘은 잠시 조그만 문틈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혼자 왔니?"
하고 규태가 먼저 물었다.
"그래요."
종원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누구한테 뒤 밟히지 않았어?"
종원이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걱정 말아요."
종원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규태는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위로 올라가자."
하고는 살며시 문을 닫고 종원을 지나쳐 앞장서서 걸었다. 그들은 여인숙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인숙의 옥상의 사각에는 낡은 굴뚝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기울고 부식 된 채 속을 드러내놓고 솟아올라 있었고 그것들에 줄을 걸고 긴장대로 받쳐 올려 헤어진 수건과 옷가지 침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규태가 담배를 피워 물고 흐릿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 가로등 너머를 바라보고 섰다. 그 얼굴에는 좌절과 회의의 빛이 역력했다. 종원도 그 곁에 내버려져 있는 녹슨 철재 의자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너한테는 정말 미안했다."
규태가 담배연기를 길게 흩뿌리며 말했다.
"내가 알았었다면 사고 못 치게 할까봐 그랬을 거라는 거 알아요. 그런데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형이 왜 이런 곳에 숨어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수."
하며 종원이 규태를 올려다보았다. 규태는 잠시 머뭇하더니 다시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들여 마시고는  
"내겐 한 푼도 없다."
했다. 그 얼굴에 다시 깊은 좌절과 회의의 빛이 묻어나왔다. 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규태를 보았다. 
"난 전과가 여섯에다가 수배를 받고 있는 죄목만 해도 셋이나 된다. 이 땅 위에선 발붙이고 살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
규태가 절망감 가득한 소리로 말했다. 종원은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규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마동식과 타협하기로 했었다. 마동식이, 큰 건 하나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내 전과들을 말소해주고 내가 어디로든 자유로이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서..."
종원이 잠시 하던 말을 멈추더니 스스로 격앙되어 벅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어깨를 한번 펴고 긴 숨을 들이셔서 한 호흡에 뱉어냈다.
"그래서 그날 정보를 제공하고 돈을 빼돌려 마동식에게 건네 준 거요?"
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규태는 대답대신 다시 담배를 빨아들였다.
"형 하나 자유로이 살아보겠다고...?"
종원의 소리가 조금 높아지자
"나도 누군가를 대신해서 삼년을 썩었던 적이 있었다."
하고 규태가 종원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이 땅을 떠날 방법이 없었다. 다른 방법이..."
하고 길게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그런데 왜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거요?"
종원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규태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어금니를 깨물더니"마동식이란 놈에게 당했어. 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했다. 종원이 다시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서 짭새를 믿수?"
하자 규태는 망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원은 순간 맥이 풀렸다.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내던져 비벼 끄고 괜스레 사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저어대다 한참 후에야
"저쪽 애들이 형을 찾고 있는 모양입디다."
했다. 규태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