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문밖으로부터 종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한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을 하루로 하는 거야. 그럼 우리 모두 다 하루살이 인생이 되는 거야. 하루살이 벌레들 알지? 태어나서 하루만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사는 목적과 방법들이 달라지겠어? 아마 지금의 이런 모습들은 아닐 거야. 안 그래?"
지숙은 더 이상 종원의 궤변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젖은 머리에 샴푸질을 해댔다. 연습실 안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던 종원도 마침내 제풀에 지친 듯 바닥에 벌러덩 누워 망연한 시선을 천장으로 향한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우리는 하루를 살다가 죽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자. 하루를 멋있게 사는 거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 봤던 거 기억하니? 그 영화 만든 사람들도 어쩌면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 우리에겐 내일이 없는 거야. 바로 오늘만 있을 뿐이라구! 내말 듣고 있니?"
지숙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여전히 연습실 안에서 혼잣말을 지껄여대며 얼쩡대는 종원을 무시하고 연습실을 빠져 나갔다. 종원이 허둥대며 지숙의 뒤를 따랐다. 젖은 머리카락을 날리며 상쾌한 걸음걸이로 앞서 걷는 지숙과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그 뒤를 따라 걷는 종원은 마치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거리를 두고서 켐퍼스를 빠져나왔다. 그들이 막 교문을 나설 때쯤 "나지숙!" 하고 지숙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숙이 멈칫하고 돌아보자 조금 전 종원이 지숙의 행방을 물었을 때 만났던 여학생 둘과 또 한명의 여학생이 다가와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중 하나가 지숙에게 바싹 다가서며
"소개 안 시켜 줘?"
하며 눈을 흘겼다. 지숙은 대답대신 고개를 모로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여학생하나가 마치 취조라도 하는 형사처럼 종원의 주위를 빙 돌면서 종원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오늘은 또 다른 뉴 페이스네? 괜찮다 얘!"
하자 또 다른 여학생이 종원에게 바싹 다가서서 얼굴을 쑥 내밀어보이며
"얘 보단 내가 더 매력 있지 않아요?"
하고는 과장되게 윙크를 해보였다.
"얜 아무한테나 추파야?"
하며 종원의 주위를 돌던 여학생이 그녀를 막아섰다.
"얘! 넌 김신자발표회에 갈 거라며?"
다른 여학생도 거들었다.
"너희는 안가?"
윙크를 해보이던 여학생이 물었다.
"우린 순간적으로 계획수정을 했어."
다른 여학생이 당당하게 말했다. 종원의 주위를 돌던 여학생이 다시 종원의 주위를 빙 돌며
"지금부터... 이 싸나이에 대한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이 말이야."
하고는 종원에게 바싹 다가서며
"괜찮으시죠?"
하고 요염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종원이 이내 
"아! 좋습니다. 제가 워낙 매력덩어리 그 자체 아닙니까?"
하고 너스레를 떠는데 지숙은 입을 다문 채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곧바로 째즈빠 야누스로 옮겨갔다. 지숙들은 칵테일들을 주문했고 종원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종원은 샌드위치를 우악스레 씹어 먹었고 여학생들은 그런 종원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숙의 시선은 아랑곳도 않고 종원은 샌드위치를 우악스레 씹어대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개미와 베짱이가 있었는데 말이에요 예? 개미는 봄에 온갖 정성을 다 들여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억수로 더운 여름날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베짱이란 놈은 나무 그늘 아래서 기타나 치고 노래나 하면서 빈둥빈둥 놀았다 이 말입니다 예?"
여학생하나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개미와 베짱이 얘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 말고 야하고 짜릿한 얘길 해달란 말예요."
하자 종원이 특유의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왜 그렇게 성미가 급하십니까? 이건 신판 개미와 베짱이란 말입니다."
했다. 다른 여학생하나가
"그래. 좀 더 들어봐 짜릿하고 아찔한 스토리가 있을지 누가 아니?"
하고 거들었다. 종원이 테이블의 여학생들 자리에 놓여있는 칵테일 잔을 빼앗듯 들어 올려 벌컥벌컥 마시고는
"가을이 되었으니까 개미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놓은걸 추수를 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날씨가 억수로 지랄 같아 가지고 한 달 내내 비만 퍼붓는 겁니다. 그러니 어찌 됐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여학생들이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