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깨닫지도 못한 채 한량스럽게 세형을 찾아와 너스레나 떨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 내기당구나 치고 록카페 한구석에서 노닥거리고 있던 시간에 백태삼의 밀실에서는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둘러싸고 굳은 표정으로 백태삼이 앉아있었고 그 곁에 박만규가 버티어 서있었다. 맞은편으로 난감한 표정의 팔봉이 고개를 떨군 채 턱을 괴고 앉았고 곁에 오명석이 서있었다. 백태삼이 
"밀고자가 있지 않고서야 김회장 애들이 떠난 직후에 경찰들이 어떻게 알고서 들이닥치고 또 우리 애들만 다치나?"
하고 낮은 목소리를 울렸다.
"따지고 보면 그 애들도 한 식구인 셈 아닌가?"
"죄송합니다."
김팔봉은 나직이 신음을 토해내며 머리를 숙였다. 김팔봉이 지금은 분가해서 한 패밀리를 이끌어가는 보스이긴 하지만, 한때는 백태삼과 한 조직내에서 그를 형님으로 모셨던 처지였기에 그 앞에서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었고, 조직내에서도 가장 냉혹했던 그였기에 내심으로는 늘 두려운 상대로 여겨왔던 처지였다. 백태삼이 다시 낮은 목소리를 울려냈다.
"설마 거래가 끝난 후라고 해서 평소의 김회장답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
김팔봉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백태삼의 움푹 패인 두 눈 사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돈이야 당연히 되돌려 주어야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하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애들은?"
하고 김팔봉을 응시했다.
"어떻게든 손을 써보겠습니다."
백태삼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삭이는 듯 나직이 긴 숨을 내쉬더니
"규태란놈... 김회장 품에서 이미 떠난 놈이라면 우리 쪽에서 대가를 치러주더라도 양해하겠지?"
하고 물었다. 김팔봉이 다시 신음 같은 한숨을 토해냈다.
세형에게, 규태의 애인 영숙과 연락을 취해보도록 부탁하고 록카페를 나선 종원은 방배동빌라 촌으로 왔다. 지숙이 사는 곳이었다. 빌라 입구로 종원이 들어서자
"어디 가십니까?"
하고 경비가 종원을 불러 세웠다. 종원이 태연히
"305호 갑니다."
하고 히죽 웃어보였다. 경비가 머뭇하며 종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305호라면...?"
"아! 나지숙이 약혼자 됩니다. 왜? 지난번에도 한 번 뵀었잖아요?"
종원이 과장스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경비는 한 번도 종원을 본 적이 없었으면서도 얼떨결에
"예? 아! 예..."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는 채를 했다. 종원이 호주머니에서 맥가이버나이프에 달린 열쇠를 꺼내 보여주며
"키는 여기 있습니다."
하고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경비도 
"아! 예..."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이 휘파람을 불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가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경비는 그런 종원을 조심스레 다시 돌아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종원이 305호 앞에 와서 흘낏 주위를 살펴보고는 호주머니에서 맥가이버나이프를 다시 꺼내 열쇠 구멍에 핀을 꽂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멀쑥한 표정으로 천천히 안을 둘러보다 무용하는 모습을 찍은 지숙의 대형 판넬 앞에서 씩 미소를 짓고는 두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고 입맞춤을 했다. CD플레이어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 록음악이 터져 나왔다. 종원이 음악에 맞춰 몸을 건들거리며 이것저것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기도 하다가 간밤의 비와 땀으로 찌든 옷들을 하나씩 벗어 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지숙의 헤어밴드로 머리를 묶어 올리고 거실로부터 들려나오는 록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며 온몸에 바디샴푸질을 했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사방으로 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샤워기를 마이크 삼아 노래하기도 하고 수건을 둘둘 말아 기타 줄을 튕기는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샤워를 끝내고 아직 젖은 채로 몸을 다 닦아내지도 않은 채 식당으로 가서 요기꺼리들을 찾아 냉장고를 열어 재꼈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토스트가 튀어 오르고 프라이팬 높이 계란 프라이가 날아올랐다. 여전히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이것저것 양념을 섞어 음식을 만들다가 손가락을 쪽쪽- 빨며 간을 보기도 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실로 들어서서 벽에 걸린 지숙의 춤추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 앞에 서서 똑같은 포즈를 취했다. 지숙의 침대로 올라가 마치 지숙의 체취라도 맡겠다는 듯 장난스레 이곳저곳을 킁킁거리다가 두 팔을 쫙 벌리고 누웠다. 온몸가득 피로감이 퍼져왔다. 그제야 간밤에 잠 한숨 못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눈을 깜박이다 이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