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큐대로부터 벗어난 공은 매순간마다 이리저리 춤추듯 흐르다가 때로는 점프를 하고 때로는 회전을 하며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부려댔다. 그때마다 둘러선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해댔고 종원과 세형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넘어 거의 흙빛이 되어갔다. 마침내 남자가 한 호흡에 게임을 끝내버리고 다시 비웃음 가득한 눈빛으로 둘을 흘낏 보고는
"잘 쳤시다."
하며 넋 나간 표정으로 서있는 종원과 세형을 지나쳐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돈을 챙겨 넣고는
"게임 생각나면 언제든지 오쇼!"
하고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종원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씨팔! 왜 영화처럼 안 되는 거야?"
하고는 잔뜩 화난얼굴로 큐대를 내던져놓고 당구장을 나섰다. 화투놀이가 되었든 카드게임이 되었든 승부를 벌이는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이든지 누구하고든지 자신이 있었던 종원으로서는, 주특기 중의 하나라고 자부해왔던 내기당구에서 의외의 패배를 당하자 스스로에게 잔뜩 화가 났다.
"씹새끼가 다마 수를 속였어."
상대를 너무 얕본 게 패배의 원인이라는 뜻이었다.
"우릴 등쳐먹는 놈도 있네 쓰발..."
세형이 빈 지갑을 털어 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씹새끼... 언젠간 다시 와서 꼭 밟아줄 거야."
하고 종원이 씩씩대며 큰 걸음으로 앞서가자 세형이
"그래. 나중에 다시 와서 엎어치기 한번 하자. 그땐 네가 꼭 이길 거야. 네가 누구냐? 게임하면 어떤 게임이든지 한게임 하는 놈 아니냐?"
하며 털레털레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이 당구장이 있는 골목을 빠져나오자 한산한 거리가 나왔다. 세형이
"아침이나 먹자?"
하자
"야! 햄버거로 대충 때우자."
하며 종원이 길 건너편의 햄버거체인점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임마! 아침은 꼭 밥으로 챙겨먹으라고 그랬단 말야."
"누가?"
"울 엄마가."
"미친놈! 나이 서른 다된 놈이 마마보이처럼 아직도 엄마 타령이냐?"
하면서 종원이 무단 횡단을 시작했다.
"야!"
하고 세형이 입으로는 종원을 부르면서도 발걸음은 종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둘은 총총걸음으로 햄버거하우스 앞으로 다가서다가 길가에 정차해있는 고급외제승용차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야! 차 빠진 거하고 때깔 한번 죽인다. 죽여!"
하고 종원이 휘파람을 불며 차 곁으로 다가가자 세형도 어깨를 으쓱 해 보이며 다가갔다.
"이런 차를 타고 다니면서 폼 딱 잡고 허리우드에서 배우생활 해야 하는 건데... 안 그러냐?"
세형이 부러운 표정을 지어보이자 종원이 그런 세형을 흘낏 보며 
"허리우드에 가보기나 했어?"
하고 시큰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세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허리우드가 어디 있는 지나 알아?"
종원이 다시 물었다.
"몰라 나두. 좌우간 충무로는 아냐!"
세형이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손가락으로 차를 톡톡 건드려보더니 손잡이 쪽을 쓱- 더듬는데 갑자기 요란스레 경보음이 울려댔다.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고 종원과 세형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종원이 괜스레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어보였다. 그때 햄버거하우스 안에서 흑인 둘이 튀어나오더니 그중 하나가 영어로
"뭐 하는 거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남의 차를 손대는 거야?"
다른 흑인 하나가 당장이라도 싸울 태세로 거들었다. 세형이
"제들이 뭐라는 거야 지금?"
하자 종원이
"영어 하는 거야."
하고 능청을 떨었다. 세형도 
"응... 영어구나."
하고 함께 넉살을 떠는데 흑인하나가 둘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너희들 지금 이차를 훔치려고 한 거지?"
하자
"너희 같은 놈들은 혼 좀 나봐야 해."
하며 다른 흑인도 강한 악센트의 영어로 떠들어대며 둘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