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하며 종원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낮은 한숨을 토해냈다.
"혼자서?"
세형이 물었다.
"나하고 물건 넘겨주고 수금 받은 돈으로 튀었어."
하며 종원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세형이 다시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알만해. 규태형 언젠가 한 번은 일 낼 거다 생각했어."
"위에선 나하고 규태형이 짜고 한 일인 줄 안다. 사흘 안에 못 찾아내면..."
하고 종원이 떫은 표정을 지어보이자
"사흘? 어림없다. 규태형 못 찾아낼 테니 너도 아예 잠수해라."
하고 세형이 손을 내저어 보였다.
"나까지 잠수하면 정말로 규태형 하고 짜고 한 줄 알 텐데?"
종원이 물고 있던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 훅하고 내뿜고는 담배를 비벼 끄며 입맛을 다셨다.
"김팔봉이 돈 삼키고 온전한 놈 봤어? 규태형도 언젠가는 칼 맞고 만다. 네가 못 찾아도 위에서 찾아낼 테니까 그때까지만 세월 죽이고 있으란 말이야."
하고는 세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종원은 그저 눈을 껌벅이며 망연한 시선으로 세형을 바라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형의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팔봉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를 시켜서든지 규태형은 물론 자기하나쯤 죽이는 일이야 쉬운 일이었다. 세형이 다시
"그나저나 규태형이 너한테도 냄새피우지 않고 사고 친 건 좀 심했다."
하며 다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종원이  
"내가 알아챘으면 틀림없이 말렸을 테니까 그랬겠지."
하고 맥 풀린 표정을 짓다가
"씨팔! 차라리 잠수해서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규태형 외국 나가서 아무도 모르는데서 폼 나게 살아보는 게 소원이었잖아?"
하자
"임마! 네가 지금 규태형 생각해줄 입장이야?"
하고 세형이 소리를 높였다. 종원이 이내
"그러게 말이다."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씨팔! 왜 하필이면 나하고 일할 때 사고를 치냐?"
하고 새삼스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맞장구를 치듯 소리를 높였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빙그르 회전을 하며 구르던 공이 멋들어지게 쓰리 쿠숀을 해 보이며 두개의 다른 공을 맞추어냈다. 종원은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해보였고 세형이 히죽 웃으며 게임상대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어보이면 남자는 떫은 표정으로 돈을 꺼내 세어 세형에게 건내주었다.
"덕분에 몸 잘 풀었습니다."
하고는 종원이 큐대 놓는데
"한 게임 더하지?"
하고 남자가 종원을 막았다. 종원이 잠시 머뭇하더니
"좋수다."
하고 다시 큐대를 집어 들었다.
"따따블 어때?"
남자가 풀린 눈으로 종원을 보며 물었다.
"좋소. 딱 한 게임 만이요?"
하고 종원이 큐대에 초크질을 하자
"좋아!"
하며 공들을 자리에 놓았다. 어느새 두 사람의 게임을 삥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어린 표정들로 귓속말들을 나누는데 남자가 다시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종원이 세형에게 다가가 나직이
"걱정 말어! 허슬러에서의 폴뉴만처럼 폼 나게 이겨 보일 테니까."
하고 윙크를 해 보이자
"그래! 난 널 믿어!"
하며 세형도 자신 있게 돈을 꺼내 세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남자가 먼저 제 위치에 놓여있는 공들을 향해 큐대를 겨누고 게임을 시작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구르기 시작하던 공들은 묘기를 부리기 시작했고 남자와 종원은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 게임에 몰입하여 승부를 벌여나갔다. 남자와 종원이 벌이는 신기에 가까운 당구솜씨들에 여기저기서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세형은 마른침을 삼켜댔다. 그러던 한 순간 종원의 공이 빗나가고 말았다.
"이런 씨팔!"
종원이 저도 모르게 비명 같은 탄식을 토해냈다. 세형이 다가와 종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나직이
"걱정 마! 저놈 실력 너보다 하수야."
하는데 남자는 큐대를 쓱쓱- 문지르며 흘낏 두 사람을 보더니 비웃음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