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반대편 저쪽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또 한대의 승용차가 비상등이 깜박인 채 세워져 있는 규태와 종원이 타고 왔던 차 뒤쪽으로 슬그머니 멈추고 곧바로 차문이 열리더니 두 사내가 내렸다. 사내들은 빠른 동작으로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그중 한 사내가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뒤쪽에 서있는 차로 되돌아가서 뒤 차창 쪽에 바싹대고 뭔가 얘기를 하고 이내 다시 되돌아온 후, 두 사내는 규태와 종원이 타고 왔던 승용차로 옮겨 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규태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어둠 저편의 차안에 있던 사내들이 흘낏 이쪽을 바라보았다. 규태와 종원이 탄 차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갔다. 종원은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이 어두운 차안에 있는 사내들에게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규태는 굳은 표정으로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규태와 종원이 탄 차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사내들이 탄 차들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려는데 요란스런 사이렌소리를 울려대며 사방에서 경찰차들이 밀려들었다. 사내들의 차가 갈팡질팡하다가 속력을 높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억센 빗줄기를 맞아내며 정적 속에서 흠뻑 젖어있던 부두는 한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추격전을 펼치며 도주를 하던 사내들의 차는 이내 경찰차들에 에워싸이고 말았다. 규태와 종원이 탄 차는 그런 아수라장을 뒤로하고 깊은 어둠 저편으로 달아났다.
"어떻게 된 거야?"
달아나는 차안에서 종원이 몸을 돌려 차창 밖의 소동을 바라보며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데 규태는 대답대신 차의 속력을 높였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무서운 속도로 부두를 벗어났다.
"이거 시나리오가 잘못된 거 아냐? 어떻게 짭새들이 냄샐 맡았지?"
종원이 여전히 흥분되어있는 표정으로 굳은 표정으로 운전하는 규태에게 물었다.
"쪼금만 늦게 출발했어도 우리도 걸려드는 거 아냐? 씨팔! 뭐가 잘못 되도..."
하며 핸드폰 폴더를 여는데
"뭐하려고?"
하고 규태가 물었다.
"전화 해 봐야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하고 종원이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전화 할 필요 없어."
규태가 냉정한 어투로 짧게 말했다.
"전화 할 필요 없다니?"
종원이 번호를 누르다 말고 규태를 보았다. 규태는 대답대신
"어떻게 할 거냐?"
하고 되물었다.
"어떻게 하다니?"
종원이 뻥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규태는 대답대신 차의 속도를 낮추었다. 두 사람을 태운 차는 오가는 차들 하나 보이지 않는 한적한 해안 한 곳에 천천히 멈추어 섰다. 억세게 내리 쏟아 붓던 빗줄기는 어느새 그 굵기가 잦아들었다. 규태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규태가 차에서 내리자 종원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조수석에 내던지고 허겁지겁 뒤따라 내리며
"어떻게 하냐니? 뭘?"
하고 차 안에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독촉했다. 규태는 대답대신 담배를 피워 물더니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는 바닷가를 향해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종원도 머뭇하다가 뒤따라 지퍼를 내리며
"뺑끼통 한번 좆나게 크다 히히!"
하고는 금세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며 소변을 보기 시작하는데 규태가 종원을 곁눈질로 흘낏 한번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시 차안으로 들어갔다. 미처 소변을 끝내지 못한 종원이 서두르며
"아직 좀 남았어. 난 즐기는 편이거든?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인간의 행복은
배설의 욕구를 만끽하는데 있다고 그러더라구."
하는데 시동을 켜는 소리가 들리자 허둥대며
"아직 좀 남았다니까?"
하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툴툴 털어 내며 황급히 지퍼를 올리고는 차 문을 열려는데 규태가 안에서 버튼으로 차 문을 잠궈버렸다. 종원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규태를 내려다보았다.
"왜 이래?"
종원이 차문 손잡이를 힘주어 잡아당겼다. 그러나 차문은 여전히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뭐하는 거야 지금?"
종원이 차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규태는 그런 종원을 잠시 보더니 굉음을 내며 차를 출발시켰다. 뻥한 표정으로 멀리 달아나는 차를 바라보며 망연히 서있던 종원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런 씨팔!"
결국 종원은 졸지에 혼자가 되어 아직 부석부석 비가 내리는 한적한 밤 도로를 털레털레 걸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