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바뀌었지?"
이혜진이 의자에 앉으며 묻는다. 손영무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본다. 경마에 한창 열중이었던 때인 예전의 관람대처럼 혼잡스럽지도 않고, 정장실이라고 하더니 정장을 하거나 와이셔츠차림에 넥타이를 맨 남자들과 비교적 단정하고 깨끗한 용모를 한 여자들만이 눈에 띈다. 객석도 신축관람대답게 고급스러워지고 안락하다. 대형 유리벽너머로 경마장의 웅대한 규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곳곳에 걸린 모니터들에서는 3경주에 출전할 경주마들이 예시장을 돌고 있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
"저 사람들도 낚시터에서 조사들이 뿌려놓은 떡밥들처럼 지금 자신들의 주변에 유혹의 미끼들이 요동들을 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언젠가 한번은 나처럼 유혹의 미끼를 물게 되면 날카로운 바늘 끝에 찔리게 되고 입이 걸리게 되고 온몸이 걸려들어 아무리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다 결국 제풀에 지쳐 처절하게 죽어가게 된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
손영무가 주위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을 의식하고 이혜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경마 계속했었어?"
손영무가 묻는다.
"응."
"그래. 많이 이겼어?"
"아니."
이혜진이 특유의 간단한 어조로 대답한다. 손영무는 씁쓰레한 미소를 짓는다.
"정말 그날 이후에 한번도 경마 안했어?"
"그날...? 아! 그날? 그래."
"왜 그날 갑자기 경마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어?"
"그냥... 싫어진 거지 뭐."
"그냥 싫어져?"
"경마 잘하니까 경마가 시시해졌었어?"
"말했을 텐데? 경마 너무 힘들었다구?"
"영무씨는 돈 많이 땄었잖아?"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하고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과장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영무씨 그럴 때 보면 참 대단해. 만사에 우유부단한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그렇게 버리기 어렵다는 경마를 하루 만에 쉽게 버리다니."
"그냥 안 하게 되니까 멀어진 거지 뭐."
그가 다시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그녀도 다시 과장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난 경마 계속했었어."
한다. 그가 
"그런 줄 알았어."
하고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내가 경마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해 온건... 유혹! 그래. 유혹 때문이었어."
하고 유혹이란 말에 힘을 주며 말한다. 그는 흘낏 그녀를 바라본다.
"중독이 아니고?"
"경마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야하는 점에서는 중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게임 룰 때문이지."
그녀는 예전의 입술을 오므리고 앞으로 내밀어보이던 습관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처럼 아랫입술을 윗니로 자근자근 씹더니 다시 입술을 오므리고 앞으로 쏙 내밀며 말을 잇는다.
"사랑 때문이라든지 돈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명예나 출세에 관해서라든지... 살아가는데 제각기 다른 여러 종류의 유혹이 있겠지만 경마의 유혹은 참으로 대단한거야. 분석을 하고 경주전개에 대한 추리를 하고 베팅을 하고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결승선에서 예상이 적중되었음을 증명해 줄 때의 환희..."
하더니 그녀는 숨을 고르듯 잠시 말을 멈추고 나직이 긴 숨을 몰아쉰다. 그는 그녀가 격앙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리며 망연한 시선을 유리벽너머로 향한 채 두 눈을 껌벅거리고만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말을 잇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한참 후에야 망연한 시선으로 유리벽너머의 경주로를 내려다보고만 있는 그를 힐끗 보고 그녀가
"나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아?"
하고 묻는다. 손영무는 경주로로 향하고 있던 망연한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흘낏 보고는
"좋아 보이는데 뭐. 잘 지낸 거지?"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