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그런 두 사람을 부러움과 시기심과 힐책이 뒤섞인 표정들로 바라보았다. 손영무는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고 살며시 이혜진의 두 팔을 풀어냈다.
"사람들 봐."
"왜? 어때서? 좋잖아?"
이혜진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잔뜩 들뜬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마권들을 다시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14배... 21장... 삼천만원돈이야."
주위의 사람들은 그런 이혜진을 바라보고 넋 나간 표정들로 맥을 놓고 있었고 손영무는 그런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살며시 이혜진을 잡아끌고 관람대 2층을 빠져나갔다.
"이거 모두 예치권으로 다시 바꿀 거지?"
이혜진이 미끌어져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리며 물었다.
"아니."
손영무가 뒤따라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며 대답했다.
"왜? 또 베팅할 거 아냐?"
이혜진이 뒤돌아 두 눈을 치켜뜨며 반문했다. 손영무는 잠시 머뭇하는 표정으로 있다가
"아니. 조금 전 9경주 때 했던 베팅으로 끝이야."
하고 말했다. 이혜진은 손영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한 채
"하긴 돈 딸만큼 땄으니까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주에 또 하지 뭐."
하고 여전히 들뜬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시는 베팅 안 해."
손영무가 나직이 긴 숨을 내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혜진이 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얘기야?"
손영무는 아무대답도 않고 그저 미끌어져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쟁터의 패잔병들 같은 군상들이 흐느적거리며 떠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혜진은 잠시 손영무의 표정을 살피더니 다시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래. 오늘은 첫경주부터 정말 힘든 경마였는데 9경주 때 영무씨가 잘해줬어. 영무씨말대로 오늘은 그만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근사한 저녁도 먹고 흠뻑 취하자."
했다. 손영무는 망연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이다가 자신과 같은 어깨높이로 떠돌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이혜진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서 여전히 뻥한 표정으로 손영무의 눈치를 살폈다.
"다시는 경마 안 할 거야. 아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남아있던 돈을 9경주 때 다 걸었어."
손영무가 뒤따라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며 말했다.
"마지막이라구?"
이혜진이 확인이라도 하듯 힘주어 물었다.
"그래."
"왜?"
이혜진이 발끈해보였다. 손영무는 잠시 머뭇하다가
"싫어졌어."
하고 말했다.
"싫어지다니?"
다시 이혜진의 두 눈이 치켜 올려졌다. 손영무는 대답을 않고 묵묵히 앞서 걸었다. 잠시 머뭇하던 이혜진이 이내 그 뒤를 따랐다.
"그런 막연한 이유 말고 진짜 이유가 있을 것 아냐?"
손영무는 잠시 두 눈을 껌벅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보기에도 영무씬 경마에는 타고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야. 아무나 그런 분석과 추리와 예상을 해내지는 못해. 예지력이 있어야 해. 아니 예지력만 있어서도 안 되지. 운도 있어야 하는데 영무씨에겐 운도 있어. 조금 전 9경주에서도 그걸 증명해보였잖아?"
이혜진이 마치 안달이라도 하듯 그의 곁에 바싹 붙어 열을 올렸다.
"조금 전 같이 몇 경주만 제대로 적중을 해낸다면 더 큰돈도 만들어낼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그만 하겠다는 거야?"
이제 이혜진의 말투는 거의 힐책에 가까웠다. 손영무는 그저 말없이 앞서 걷기만 했다. 그런 손영무의 태도가 불만스러운 듯 이혜진이 그의 팔을 붙잡고 돌려 세웠다.
"정말 이제 경마 안 할 거야?"
손영무는 그런 그녀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다시는 경마를 하지 않겠다고...?"
이혜진이 나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내가 싫은 거야?"
하고 그를 빤히 바라다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