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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꽤 많이 들어있어서 덕분에 그런대로 빚도 갚고 또 필요했던 것 좀 사느라고 쬐끔 더 꺼내 썼다며 다시
건네주었던 손영무의 현금지급카드의 예금 잔액은 그가 짐작했던 만큼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어딘가로 계좌이체 되어버리고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그
돈들은, 그가 일년 넘는 동안을 경마장을 드나들며 하루 경마가 끝나고 사람들이 내버린 온갖 종류의 예상지들을 주워가지고 돌아가서 이미 끝나버린
경주들의 결과를 놓고 다시 분석하고 또 새로운 경마일이 되면 지난 경주들의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정보들과 자료들을 다시 분석하고 경주전개를
예상하고 경주결과를 추리하여 매경주마다 베팅하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며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경주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에만 베팅을 하여 얻어낸
결과이며 거기에다 경마장사람들에게는 그리 흔치않은 행운까지 따라주어 따낸 돈들이었다.
"왜? 얼마 남지 않아서 화났어?"
이혜진이
현금자동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해내는 손영무 곁에 서서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손영무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또 따면 되잖아? 영무씨 경마 잘하잖아? 그깟 돈 몇 경주만 잘 때리면 얼마든지 다시 채워놓을 수 있잖아?"
이혜진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그녀의 말대로 그가 지금까지 보여 온 경마적중실력으로 봐서는 그녀가 계좌이체 시켜간 액수쯤은, 어느
경주에서든지 경주 출주마들을 분석하고 출주마방의 전월과 당월의 상금수득 내역과 마주와 조교사의 승부의지에 대한 확신여부와 출주마필의 조교상황과
출전당일의 컨디션과 경주로조건과 기수능력과 기수와 경주마의 일체감여부와 경주코스와 출주마필의 거리에 대한 적응여부와 출주마필들간의 전력비교와
상대전적, 그리고 경주전개를 추리해내고 분석해내고 예상해낸 후 확신 있는 베팅을 하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돈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 또 만들면 되지 뭐."
손영무는 혼잣말처럼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출해낸 돈들을 주머니 이곳저곳에 쑤셔 넣으며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혜진을 흘낏 보고 씁쓰레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혜진은 그제야 뾰로통해 있던 표정을 거두고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 활짝 웃어보이던 얼굴은, 경주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관람대 2층 한곳에 자리를 잡고서 부푼 기대감으로 첫 경주의 베팅을 시작한
이후부터 경주가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날의 경주는, 손영무가 분석하고 추리하고 예상한대로 전개되어지지 않았다. 매
경주마다 의외의 변수가 생겨났다. 도주력이 막강했던 경주마가 늦출발로 선행대열에 합류조차하지 못하고 후미에 쳐진 채 승부의지를 아예
단념해버리거나, 강력했던 축마의 기수가 낙마를 하거나, 입상유력마였던 경주마가 내측사행을 하여 강착을 당하거나 하여, 손영무가 베팅을 한
경주마들과는 무관하게 착순이 확정되어졌다. 결국 손영무는 7경주째까지 한경주도 적중시키지를 못했고 주머니 이곳저곳에 쑤셔 넣어왔던 돈들로 교환한
예치권들도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동안 이혜진은 마치 그런 변수들까지 예상해내지도 못했느냐는 듯 불평을 해댔고 그때마다 손영무는
어이없어 맥을 놓고 있던 표정들을 더욱 찌푸려야만 했다.
"와! 85배야 85배!"
8경주까지 의외의 복병마들의 선전에 따른
고배당으로 착순확정이 되자 이혜진이 또다시 부러움과 짜증 섞인 투정을 해댔다.
"어떻게 우리가 산건 하나도 안 들어와? 저기에 몇 장만
샀어도 얼마나 좋아? 저 말 들어올지 몰랐어?"
손영무는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푸념과 힐책에는 아랑곳 않고 묵묵히 예상지를 들여다본 채
여전히 분석하고 추리하고 예상을 하는 일에만 열중을 했다.
"어떻게 오늘 한 경주도 못 맞춰? 경마를 할 줄 알긴 아는
거야?"
이혜진은 아예 작정을 하고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제야 손영무는 이혜진을 흘낏 보더니 뭐라고 대꾸를 하려다가 이내 체념의
표정을 짓고는 다시 예상지로 시선을 돌렸다. 이혜진은 그런 손영무를 보고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잘 좀 해봐. 이러다가는 돈 다
잃겠어."
손영무는 긴 숨을 몰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는 거야?"
이혜진이 쏘아붙이듯
물었다.
"말보러..."
손영무가 시큰둥하게 대답을 했다.
"말들을 그냥 바라만 보면 어떻게 알어? 그냥 바라만
보지 말고 몇 등으로 뛰어 들어올 건지 말들한테 한번 물어봐?"
이혜진이 되지도 않는 말로 소리쳤다. 두 사람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영무는 그런 이혜진은 돌아보지도 않고 터벅터벅 걸어 관람대 2층의 계단을 내려와 예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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