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이, 상류사회의 귀부인으로 살아가게 만들어 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손영무의 곁을 떠나기 한두 달쯤 전 한대웅을 만나고부터였다.
"안녕하세요. 한대웅입니다."
이혜진이 다가가자 한대웅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훤칠한 키와 선 굵은 용모에서 뿜어내는 시원한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혜진입니다."
이혜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대웅은 의자를 당겨 이혜진을 앉으라고 권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옷맵시와 퍽 어울려 보이는 매너였다. 이혜진은 다시 미소로 고개를 갸웃해보이고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한대웅은 이혜진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맞은편의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소리 나지 않게 의자를 당기고 앉았다.
"양부장님이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니 정말 그러네요."
한대용이 다시 두툼한 입술을 벌리며 활짝 웃어보였다. 이혜진은
"양부장님은 아직 안 오셨나보네요?"
하고 애써 겸손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양부장은, 이혜진에게 한대웅을 소개해주기로 했던 그녀와 몇 번 거래를 했던 컨설팅회사의 팀장이었다.
"좀 늦을 것 같답니다. 차 마시면서 먼저 얘기 나누라고 했습니다. 우선 차부터 드시죠."
한대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웨이터를 흘낏 바라보고는 이혜진에게 물었다.
"커피 마시겠습니다."
이혜진이 커피를 주문하자
"나도 커피주세요."
하고 한대웅도 커피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다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 멀어져갔다.
"담배 피워도 되겠습니까?"
하고 한대웅이 양해를 구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이혜진이 짧게 대답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대웅은 상의 주머니에서 금장담배케이스와 포효하는 사자상이 조각 된 라이터를 꺼내 단정하게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한가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이혜진은 담뱃불을 붙이는 한대웅을 비스듬한 시선으로 흘낏 보았다.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는 그의 두 볼이 움푹 파인 듯 보였다. 순간 이혜진도 그가 깊이 빨아들이는 담배연기와 함께 빨려들고 말았다.

이혜진과 한대웅의 관계는 급속히 연인사이로 발전했고, 한대웅은 그녀가 바라던 대로 그녀를 상류사회의 귀부인처럼 대접했다. 거의 매일을 그녀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만 데리고 다녔으며, 만나는 사람들도 상류층부류의 사람들이었고, 최고급의 레스토랑에서만 식사를 하거나 특급호텔에만 투숙을 했다. 한대웅은 섹스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안달이 난 쪽은 이혜진이었고 그녀 스스로 한대웅에게 몸을 맡겼다. 한대웅은 섹스의 테크닉에서도 그녀가 그동안 상대해왔던 몇몇 남자들과는 놀라울 정도로 달랐다. 그녀는 매번마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지르며 절정감을 느꼈고 어떤 날은 몇 번이나 되풀이 되는 절정감에 혼절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지쳐 보이는 기색을 하지 않았고, 아침에도 먼저 일어나 샤워를 끝내고 침대 곁에 걸터앉아 미처 깨어나지 못한 그녀를 살며시 내려다보고 있다가, 그녀가 인기척에 살며시 눈을 뜨면 따뜻한 시선으로 미소를 짓고는 달콤한 입맞춤을 해주는 것으로 아침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런 때마다 한없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면, 그는 호텔의 푸드 테이블에 앉아 미소로 그녀를 맞이했다. 결국 그녀는 그를 한순간이라도 사랑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완전히 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아니 스스로 포로가 되기를 원했다. 그녀는 항상 열려있는 그의 가슴에 파묻히기를 원했고 그녀의 바람대로 그는 항상 두 팔을 열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물론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에게는 많은 여자가 있긴 했었다. 때로는 그녀와 함께하고 있는 시간에도 그의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제각기 다른 여자들의 목소리는 수없이 많았다. 그는 그런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녀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고 결코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전화매너로 여자들을 뿌리친 후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런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싫은 표정을 지어보일 넋 나간 여자는 세상에 하나도 없었으리라. 그녀가 오히려 다른 여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도시 흠잡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완벽한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사랑하게 된, 아니 그런 남자에게 사랑을 받게 된 자신은 정말로 축복받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나 사랑해요?"
한대웅이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라운드브릴리언트 컷트 5캐럿의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다이아몬드반지를 청혼의 뜻을 담아 그녀 앞으로 내밀었을 때, 그녀는 감격에 겨워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