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태는
"삼복조로?"
하며, 밤새워 대여섯 종류나 되는 예상지를 뒤적이며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던 까닭에 9경주가 4세 이상의 국산2군마 1800M경주라는 것을 알고 또 어떤 말들이 입상유력한 말들로 예상되어있는지 까지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예상지의 9경주 난을 펼쳐보고는
"2번은 빼고?"
하고 흘낏 종원을 보았었다. 종원은
"응."
하고 짧게 대답을 할뿐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었다. 규태는 마음속으로는 대여섯종류나 되는 예상지들에서 축마로 예상을 한 2번마를 빼고 삼복조를 하자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종원이 9경주를 승부경주로 결정하고 더욱이 강력한 축마를 빼고 삼복조베팅을 하자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고 아무 말도 않고 마권구매창구로 가서 300만원을 밀어 넣고 예치권으로 바꿨다. 그동안 종원은 복도유리창 너머의 경주로를 바라본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바꿨다. 지금부터 예매를 할까?"
규태가 손에 쥔 예치권들을 내밀어보이자 종원은 여전히 경주로를 향한 채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형이 6,8하고 6,11사. 내가 8,11 살게"
하고 예치권을 세어 나눈 후 마권구매표 한 뭉치를 놓고 표기를 하기 시작했었다. 둘은 7경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창구를 돌며 30장이나 되는 9경주예매를 끝내고는 도시락을 사들고 관람대를 빠져나가 예시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시장은 경주마들이 7경주에 출주하기 위해 모두 경주로로 이동을 한 후였고 관람석도 몇몇 사람들만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 텅 비어있었다. 둘은 플라스틱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여유 있게 도시락을 비웠다. 스피커를 통해 7경주의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잠시 후 경주마들이 결승선에 가까워지는 듯 관람대에서 함성들이 터져 나오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정말 본전만 찾으면 경마 그만 할 거지?"
종원이 규태에게 다짐이라도 받듯 물었었다.
"그만 한다니까."
규태가 과장스레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종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었다.
둘은 9경주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관람대의 3층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빰빠라-하는 음악소리와 함께 대형화면에 발주요원이 깃발을 흔드는 모습이보이고 9경주에 출전할 경주마들이 발주대 안으로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했었다. 규태는, 종원의 승부가 맞아떨어진다면 종원과의 약속대로 어쩌면 마지막으로 지켜볼 경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정말 종원의 예상대로 6, 8, 11의 승부경주가 되어줄까 반신반의하는 초조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배당판의 배당은 대부분의 예상지의 예상대로 2번마를 축마로 하여 4, 6, 7, 8, 11, 12의 순서로 배당이 형성되어있었고, 종원이 선택한 6과 8의 배당은 14배로, 6과 11의 배당은 18.6배로, 8과 11의 배당은 무려 42.1배나 되어있었다. 이윽고 탕! 하는 소리와 함께 경주마들이 발주대를 뛰쳐나왔다. 선행마들로 분류되던 경주마들이 한발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혼신을 다해 질주를 시작했다. 강력한축마로 꼽혔던 2번마가 예상대로 인코스의 이점과 선행력을 앞세워 선행싸움에서의 유리한 자리를 선점했고 다른 선행마들이 그 뒤를 바싹 추적하는 형태가 되었다. 모두가 그런 형태로 경주가 진행되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최외각의 자리에서 무서운 추진력으로 일직선을 내달리던 12번마가 눈 깜짝할 순간에 2번마를 앞질러 선행에 나섰고 사람들의 함성이 다시 터져 나왔엇다.
"정말 2번 없는 가봐!"
규태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규태의 분석능력으로도 2번마는 선행을 받지 못하거나 선행싸움이 길어지거나 선행싸움으로 체력소모가 많아지면 이내 지구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뒤로 밀려나버리는 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주에서는 동반 출주한 다른 선행마들과 비교해 근소하게나마 선행력이 앞설 뿐 아니라, 더욱이 2번게이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선행싸움에 밀리지 않을 테고, 이미 전경주1800M에서도 좋은 기록으로 입상을 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마예상전문가들이 2번마를 강력한 우승마로 예상을 했었는데 12번마의 예상치 못한 선행 장악은 9경주가 예상외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게 했었다.
"정말 2번마 없는가봐 그지?"
규태는 다시 한 번 소리치며 흘낏 종원을 보았다. 그러나 종원은 승부할 때 늘 그렇듯이 무표정하게 경주로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규태는 다시 대형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12번마는 빠르게 달아나며 단독질주를 시작했고 2번마는 급격하게 발걸음이 무뎌지더니 이내 바싹 뒤따르던 4, 6, 8, 9번마들에게 마저 자리를 빼앗기며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다시 사람들의 욕설 뒤섞인 탄성들이 터져 나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