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태는 잠시 머뭇하는 표정을 짓더니
"야! 그거야... 할 수 없는 거 아냐?"
했었다. 종원은 그런 규태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래서 승부가 아니라는 거야."
하고는 의자 깊숙이 몸을 낮추며 잠자려는 자세를 해보였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안 들어올지도 모르는 말에 어떻게 승부를 해? 난 그런 승부 안 해."
"어떻게 사람이 승부를 했다고 해서 꼭 이기기만 해? 승부했어도 잘 안 될 수도 있는 거지?"
"잘 안될 수도 있는 것에 승부하는 게 무슨 승부야? 확신이 있을 때에만 승부하는 게 진짜승부지. 내가 말했었지? 경마하는 사람들은 습관처럼 매경주마다 승부 아닌 승부를 한다고? 그건 그냥 습관적인 베팅을 하는 것일 뿐이지 승부가 아냐."
"아! 골 때려! 됐어. 너하고 더 얘기했다간 내 머리에 쥐나겠어! 아니 머리통이 폭발해 분해되어버리고 말거야! 아이고!"
규태는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짜대며 다시 진저리를 쳐댔고 종원은 그런 규태는 아랑곳도 않고 고개를 돌린 채
"난 그런 승부 안 해."
하고는 눈을 감았었다.
그날 밤, 다시 규태가 마련해준 모텔 방으로 일찌감치 들어간 종원은 대여섯 종류나 되는 예상지들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하나씩 샅샅이 살펴보고 비교하고 체크하고 두 눈을 깜빡이며 골똘하게 생각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몸을 추스르며 예상지들을 덮고는
"오늘... 본전 찾아주면 정말 경마 끝낼 거지?"
했었다. 그런 종원을 초조한 표정을 지켜보고 있던 규태가
"보이는 거 있어? 오늘은 감이 좀 와?"
하고 잔뜩 기대감어린 표정으로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응."
하고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인제 좀 자자. 어차피 오전 경주는 없으니까."
하고는 기듯 하며 침대로 가 잔뜩 지친 몸을 내던졌었다. 규태는 나동그라진 종원에게 바싹다가 앉으며
"오전엔 없어?"
하고 물었다. 종원은 잔뜩 피로에 지친 음성으로 나직이
"없어."
했었다. 규태가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종원은 여전히 피로에 지친 음성으로 느릿느릿
"오전엔... 그냥 운 좋으면 서너 곳 나눠 베팅하다보면... 운 좋은 대로 들어올 것들뿐이야. 승부랄 것도 없어."
했었다.
"그래서 오후경주만 하러 천천히 가자고?"
"오전엔 승부할만한 경주도 없는데 뭐 하러 일찍부터 가서 진을 빼?"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승부하는 거지?"
"그래."
규태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종원 곁에 누우며
"난 널 믿어."
하고는 종원을 꼭 껴안았었다. 종원은
"왜 이래? 징그럽게?"
하고 웅얼거리면서도 규태를 밀쳐내지는 않았었다. 아니 밀쳐낼 힘조차 없어 보였다. 규태는, 종원이 예상지들과 씨름을 하며 모든 기력을 소진했다고 느끼며 괜스레 종원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그만큼 무엇이든 승부를 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종원에 대한 야릇한 존경심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규태도 이내 잠이 들고 말았었다.
열한시가 훨씬 넘어서야 체크아웃을 알리는 전화벨소리에 깨어난 둘은 식사도 거른 채 경마장을 향했었다. 둘이 경마장에 들어섰을 때는 막 6경주가 끝난 후였다. 둘은 중앙안내소의 게시판으로 가 섰다.
"네 말대로 배당들이 어정쩡했다 야."
규태가 6경주까지 5배남짓으로 형성 된 배당을 보며 말했다. 종원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저런 경주들이 제일 지랄 같은 경주들이야. 나눠 베팅하기도 지랄 같고 나눠베팅해서 맞춰도 그저 그렇고... 그래서 오전경주 없다고 한 거야."
하더니
"얼마 가지고 왔어?"
하고 물었다.
"삼백. 더 필요하면 더 뽑고."
하자 종원은
"본전 찾는 덴 그거면 충분 해."
하고는
"9경주에 6, 8, 11 삼복조로 각각 백씩만 사자."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