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규태는 묵묵히 경주를 지켜보고만 앉아있던 종원과 달리 하루 내내 흥분으로 들떠 있다가
"야! 이런 날 어디든 한번 딱 때려 넣었으면 한방에 본전을 ....아니 본전이 뭐야? 한건 딱 올리는 건데 말이야."
하며 경마장을 나설 때까지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었다.
"너! 오늘 들어온 말 중에 눈에 들어오는 말이 없었냐?"
"내가 그걸 무슨 재주로 알어?"
"넌 선수잖아?"
"무슨 선수?"
"승부! 승부게임에 뛰어난 선수! 선수는 이런데서 한번 빛을 발해야지?"
"형이 해 선수!"
규태는, 차가 길게 꼬리를 물고서 기어가듯 남태령을 넘어설 때까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다가 사당동로터리를 빠져나와서야 아쉬움과 미련 가득한 회한으로 끙-하는 신음을 토해냈었다. 종원은 연신 끙끙거리며 신음을 토해내는 규태를 흘낏 보더니
"경마 재밌데?"
했었다. 규태는 잔뜩 불만 가득한 얼굴로
"뭔 재미? 돈도 못 땄는데? 돈 못 딴 게 문제가 아니라 단 돈 만원도 베팅도 못해봤는데 재미는 무슨...?"
하며 시큰둥해하는데도 종원은
"그런 맛 때문에 경마들을 하나봐?"
하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었다.
"그런 맛이라니? 무슨 소리야?"
"글쎄... 짜릿한 승부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경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있었어."
하고 다시 미소 띤 얼굴을 했었다. 규태는 그런 종원을 다시 뜨악한 표정으로 보았었다. 종원이
"아까 8경주였나? 짜릿하게 코차와 코차로 승부가 났을 때 있었지?"
하자 규태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8경주면... 5번말 하고 9번말?"
했었다. 종원이
"응."
하고 다시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규태는 입을 크게 벌리며
"배당이 자그마치 194밴가 그랬었지?"
했었다. 종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랬었나...?"
하자 규태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종원을 흘낏 보다가 한 순간 두 눈을 번쩍 치켜뜨며
"그 말 찍었었어?"
하고 소리를 높였었다. 종원은 나직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응... 결과적으로 코차이의 승부로 이기긴 했지만... 아무튼 그 두 마리가 들어올 것 같았어."
했었다. 규태가 핏발 가득한 얼굴로
"뭐? 그럼 말을 하지?"
하고 소리를 높이자 종원은 이내
"말했으면 사자고 했을 것 아냐?"
했었다. 규태는
"그걸 말이라고 해! 아이고!"
하고는 두 손으로 크락숀을 쾅쾅 두드려대더니
"그 경주 배당이 자그마치 194배였단 말야. 알아?"
하고는 당장이라도 차문을 박차고 튀어나갈 기세로 씩씩대며
"194배! 194배야! 눈 딱 감고 네 승부감각 믿고... 아니 승부감각이 아니라도 좋아! 게임메이커 박종원이 때리자고만 했으면 까짓 100만정도야 우습게 때렸을 거 아냐? 그럼 얼마야? 와!"
하고 부르르 온몸을 떨어대며
"딱 한방으로 본전 다 찾아내는 것 뿐 아니라 오히려 경마로 돈 왕창 따내고 네 말처럼 나하고는 맞지도 않는 지긋지긋한 경마장출입도 빠이빠인데 왜 말 안했어? 아이구!"
하고는 다시 크락숀을 쾅쾅 두드려대며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쳐댔었다. 신호대기로 규태의 차 곁에 나란히 정차되어있던 다른 차의 사람들이 차창너머로 뻥한 표정들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원은 규태의 동물의 비명 같은 울부짖음과 진저리를 쳐대는 행동에는 아랑곳 않고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만약에 안 들어왔으면?"
했었다. 규태가
"안 들어오다니...?"
하며 여전히 씩씩대는 얼굴로 종원을 쏘아보듯 바라보자
"형 말처럼 백만원 때렸는데... 안 들어왔으면?"
하고 종원이 다시 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