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승부할 경주가 없다는데 왜 그래?"
하며 두 팔을 소파걸이에 걸치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규태는 다른 예상지 하나를 들어 보이며
"야! 이 책으로 다시 공부 좀 해봐라! 어느 말이 갈 말인지 조교사작전인터뷰도 좀 살펴보고... 습보 속보 조교일지도 자세히 검토해보고... 승급턱걸이 착순이 어떤지도 분석해보고...응? 내일 승부 봐야 할 거 아냐?"
하고 다그쳤다. 종원은 그런 규태를 뚱한 표정으로 보더니
"형 별거 다 아네?"
하고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뭘?"
규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조교사작전이 어떻고 조교상황이 어떻고 승급착순이 어떻고..."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냐?"
"알 거 다 아는데 왜 못 이겨?"
"그런 걸로 어떻게 이겨?"
"그럼 형이 알고 있는 건 이기는데 전혀 도움 안 되는 것들만 알고 있다는 얘기네?"
"나만 그러냐? 경마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게 모두 그런 거지."
"그러면서 경마가 무슨 승부게임이라고 그래?"
종원이 핀잔을 주듯 내뱉자 규태는 할 말을 잃은 듯 목을 길게 뽑아내고는
두 눈만 껌벅였다. 종원은 이내
"그럼 됐네. 형이 해!"
"뭘?"
"경마에 전혀 매력 못 갖는 나한테 승부하라고 하지 말고 형이 직접 해! 그럼 되잖아?"
"난 못 이긴다니까?"
규태는 마치 당장 주먹이라도 휘둘러댈 것처럼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내일은 승부할 경주가 없다니까?"
"승부할 경주가 없다니?"
"없어."
"아무러면 경주가 열두경주나 되는데 어디 한경주라도 승부할 게 없을까?"
"없다니까?"
"왜?"
"왜는 무슨 왜야?"
"네가 승부를 못하겠다니 이해 할 수가 없잖아?"
"뭘 이해 못해? 승부 할 경주가 없다는데?"
종원이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규태는 그런 종원을 다시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쉽게 말해줘 봐."
했다. 종원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만 저었다. 규태는
"보이는 경주가 없다는 거야?"
하고 묻더니 다시
"감이 안와?"
하고는
"한 경주도?"
했다.
"그래. 없어. 한 경주도... 보이는 말도 없고 감도 안 오고..."
"정말 하나도 없어? 네 말처럼 오래 할 것도 아닌 경마 그냥 한방에 왕창 때려넣게!"
"대끼리경주라는 건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그건 결과일 뿐이라고!"
종원이 소리를 높이자 규태는 다시 멀뚱한 시선으로 두 눈을 껌벅이더니
"보이는 경주? 야! 네가 무슨 신들린 점쟁이냐? 보이는 경주 찾게?"
하고는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의 예상지들을 휙 밀쳐냈다. 종원은 그런 규태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며
"왜 화를 내고 그래?"
하고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내
"신들린 점쟁이 아니니까 못하겠다는 거 아냐?"
했다. 규태는 괜스레 머쓱해져서
"그러니까 네 말은... 내일경주가... 결과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그러니까 경마장용어로 혼전경주... 아니 왕창 터지는 날이다 이 말이냐?"
했다. 종원은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종원의 예상은 정확했었다. 종원이 토요일경마에서는 승부를 포기하겠다며 잠들어버리자, 규태는 종원대신 밤새 예상지들과 씨름을 하며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서 경마장을 찾았고, 종원이, 보이는 말도 없고 감도 안 와서 한 경주도 승부할 경주가 없다며 단 한 번의 베팅도 하지 않았던 토요일의 경주는 하루 내내 백배를 넘나드는 고배당의 경주결과가 빚어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