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종원은, 규태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에는 아랑곳도 않고
"그런데도 형은... 경마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인 동일하지 않은 조건을 간과하고, 지난주 11경주를 대끼리라고 확신했었잖아? 12마리나 되는 경주마가 서로 제각기 달라진 경주조건에서의 질주를 펼쳐서 145배나 되는 배당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경주를 말이야."
했었다. 규태가 이내 떨떠름한 얼굴로 
"대끼리경주로 뻔히 보이는 경주조차 대끼리경주라는 확신을 가지고 베팅을 할 수 없다면..."
하자 종원은 단호한 어조로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대끼리경주란 경주결과적인 얘기일 뿐이란 말이야."
했었다. 규태는 여전히 떨떠름한 얼굴로
"이거야 원... 네 말대로라면 대끼리도 못 믿는데 어떻게 경마를 하냐?"
했었고 종원은 다시
"그러니까 경마에 승부를 건다는 게 무모하다는 거 아냐?"
했었다. 규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괜스레 고개만 저었다. 종원이 그런 규태를 잠시 바라보다가
"형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경마예상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대끼리 한방일 것이라고 생각한 11경주를 난 왜 대끼리로 보지 않았냐고 물었었지?"
하자 규태는 퉁명스레
"그래."
하고 쏘아붙이듯 대답을 했다. 종원은 잠시 생각 하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그 대답을 하기 전에..."
하더니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형!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했었다.
"뭘?"
"베팅을 하려면... 입상이 유력한 말부터 찾아내야지. 그렇지?"
"그래서?"
"만약에 말야. 모든 경주마를 똑 같은 조건의 경주로에서 동일한 부담중량과 동일한 기수를 기승시켜 단독질주를 하게 한 후 주파기록만으로 순위를 결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마가 어디 있냐? 그리고 그런 경마를 누가 보러가고 또 누가 돈을 거냐?"
"그럼... 항상 두 마리의 경주마를 늘 동일한 거리와 동일한 부담중량으로 동일한 기수를 기승시켜 항상 같은 조건의 주로상태에서 경주하게 한다면?"
"네가 마사회장을 하든지 아니면... 그래. 경마장을 또 하나 차리면 되겠다. 하긴 옛날에는 미국 같은 데에선... 꼭 그렇게는 아니지만 두 마리로만 맞장을 뜬 경마도 있었다더라."
"하지만 과천경마장에서 벌이는 경마는 늘 출주하는 상대마들이 바뀌고 부담중량도 바뀌고 경주조건도 바뀌고 간혹은 기승기수도 바뀌지. 그렇지?"
"그렇다고 했잖아?"
"역시... 그것이 답이야. 그 바뀐 상대마들과 부담중량과 경주조건과 기승기수들 때문에 경주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매경주마다 전력질주 또는 전력승부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
"그건 누구나 다 아는 기초적인 얘기라고 했었잖아?"
"누구나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스스로 간과해버리기 때문에 경마를 하는 사람들은 매경주마다 승부 아닌 승부를 하는 거야. 습관처럼."
"쉽게 말해라 쉽게 좀! 나 같은 놈은 어디 너 같은 고수가 하는 말 알아나 듣겠냐?"
"좋아! 결국 경마는! 경주마의 순수한 경주능력과 그 경주마에게 주어진 경주조건들을 믿고 베팅을 할 것이냐?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을 믿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버리기를 한 후 버릴 것이 없는 경주마에 베팅을 하느냐의 게임이야."
"그게 쉽게 한 말이냐? 그 말이 그 말이지? 빌어먹을!"
"됐어. 그럼! 나도 더 할 말 없어. 다만 지난주 11경주 때는 모든 말들이 다 믿어졌고 또 반대로 모든 말들을 지워버렸더니 결국 베팅 할 수가 없었다는 거야."
종원은 그렇게 말하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다시 예상지를 펼쳐들었다. 규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난 네 말 무슨 말인지 아직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까... 좌우지간에 넌 무조건 이기면 되는 거야. 그래. 이겨! 이겨서 내 돈만 되찾아 주라. 그러면 돼. 오케이?"
했었다. 종원은 아무대답도 않고 묵묵히 예상지를 넘겨가더니 이내 예상지를 덮어버리며
"내일은 승부 할 게 없어."
했었다. 규태가 뜨악한 표정으로
"승부할 게 없다니?"
하고 바싹 얼굴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