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그런 규태를 한번 흘낏 보았을 뿐 이내 예상지로 시선을 돌렸었다. 규태는 쩝-하고 입맛 다시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뭐... 꼭 네가 돈을 물어준다고 해서이거나... 또 네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지... 뭐 그런 게 아니라... 경마라는 게... 네가 지금까지 해온 다른 승부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다시 말해... 네가 늘 말하는 승부감각만의 게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여주고 싶었거든?"
하고 괜스레 긴 한숨을 내쉬어보이고는
"근데 말야. 돌아와서 확인해보니까... 네 말처럼 대끼리로 안 들어왔거든? 그날 밤에 PC방에 가서 경주결과 검색했을 때...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어? 정말 네 말처럼 대끼리가 아니었더라구. 대끼리 준대끼리는 커녕 자그마치 145배로 들어와 버렸거든? 그때 난 깨달았다. 박종원이 넌... 승부를 벌이는 일에는 정말 대단한 놈이라고."
한 후 괜스레 혼자서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이고는
"근데 말야. 너 정말 대끼리 아닐 줄 어떻게 알았냐?"
하고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기라도 하는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종원은 그런 규태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예상지만 넘기고 있었다. 저 혼자 떠들어대던 규태가
"내말 안 들었어?"
하고 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종원은
"뭘?"
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규태가
"어떻게 대끼리가 아닐 거라고 확신을 했었느냐 말야?"
하고 다시 소리를 높이자 종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난 형이 아니니까."
하고 툭 내뱉었다. 규태는 다시 두 눈을 껌벅여 보이더니 이내 머쓱한 표정으로
"그래. 정답이다!"
하고는 저 혼자 다시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욕실로 들어 가버렸었다.
"모든 게임에는 반드시 승부를 해야 할 때와 승부를 쉬어갈 때와 승부를 피해야 할 때가 있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항상 그것을 염두에 두지."
규태가 샤워를 마치고 다시 소파 앞에 마주앉자 종원이 보고 있던 예상지를 덮고 담배를 피워 물며 말했었다.
"경마의 경우... 모든 경주마가... 경주마로서의 역량이 끝날 때까지... 출전하는 모든 경주에서 전승을 해낼 수 없다는 전제하에..."
하고 담배연기를 길게 빨아들여 깊이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뿜고는, 규태를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씩 질문을 해나갔고, 규태는 두 눈을 껌벅이며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출전하는 모든 경주마다 전력승부를 할 수 없음으로... 어느 경주에서는 전력을 다해 승부를 하지 않거나 일부러 승부를 피할 때가 있을 거야. 안 그래?"
"... 그렇겠지."
"일부러 전력승부를 하지 않는 경우와 전력승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 다른데..."
"전력승부를 하지 않는 경우와 전력승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
"먼저... 어떤 때 경주마가 일부러 전력승부를 하지 않을까?"
"우선 말 컨디션이 안 좋을 때겠지."
"또?"
"경주조건이 안 좋을 때"
"어떤 조건?"
"글쎄... 게이트가 너무 바깥쪽이거나 부담중량이 높다거나...
"또?"
"승부해봤자 안된다고 생각될 때."
"누가?"
"조교사든 마주든?"
"왜?"
"글쎄..."
"뛰어보지도 않았는데?"
"비교전력이라는 게 있잖아?"
"비교전력? 그건 말 그대로 비교전적일 뿐인데?"
"그렇지만 대부분 비교전력 분석대로 결과도 그렇게 되던데?"
"경마는 두 마리의 경주마가 뛰는 경주가 아니야. 그지?"
"그렇지. 최소한... 그래. 일곱 마리이상은 뛰는 경주지."
"그래. 바로 그 일곱 마리 이상의 경주마가 매 경주 때마다 동일하지 않은 조건에서 경주를 하는 게 경마야. 우리는 그 동일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펼쳐지는 경주에서 입상을 해낼 수 있는 말을 찾아내는 것이고. 맞지?"
"그건 경마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 아냐?"
종원의 질문들에 규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