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이다가
"뭐? 삼천만원?"
하고는
"너 한방에 승부 보려고 하는 거야?"
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떠 보였다. 종원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차피 본전만 되찾으면 끝내기로 한 승분데 오래 끌 것 없잖아? 한두 번의 승부로 끝내야지."
했었다.
종원이 말한 승부는 바로 다음 주 일요일 경주에 있었다. 규태는, 종원이 다시 승부를 벌일 경마일을 기다리기까지, 조직의 일에서는 규태가 나서야만 하는 사건도 일어나자 않아 한 주일을 무료하게 보내는 동안, 생에 가장 긴 한 주를 보낸다고 연신 투덜댔었고 금요일이 되자 그 정도는 극에 달했었다. 금요일 밤, 종원을 배불리 먹여준 규태는 아예 모텔 방 하나를 잡아놓고는 편의점들을 헤집고 다니며 경마예상지들과 각색의 싸인펜들과 담배와 맥주와 간식거리등을 한 아름 사들고 와서 종원 앞에 쏟아놓으며
"여자만 빼고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하고 마치 대단한 일을 벌이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었다. 종원은 그런 규태의 태도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보이고는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규태는 종원이 욕실로 들어가자 테이블과 소파를 조명등아래 밝은 곳으로 끌어다 옮겨놓고 테이블 위에 예상지들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각색의 싸인펜들과 담배와 라이터와 재털이와 간식거리등을 가지런히 놓고는, 종원이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올 때가지 옷도 벗지 않은 채 잔뜩 긴장된 얼굴로 방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종원이 젖은 몸을 닦아내며
"왜 그래? 꼭 한바탕 하러나갈 사람처럼?"
하자 규태는
"나... 신경 쓰지 말고 공부 시작해."
했었다. 종원이 다시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이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
하며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셔대자 규태는 잠시 두 눈을 껌벅껌벅 하더니
"그래? 그럼 나... 나가 있을까?"
했었다. 종원이
"그러던지..."
하자 이내 고개를 저으며
"아냐. 내가 곁에 있는 게 나을 거야. 그렇지?"
했었다. 종원은 헛웃음을 짓고는
"알아서 해."
하고는 가운을 걸치고 소파에 앉자 규태도 얼른 종원 앞에 앉았다.
"좀 봤어?"
종원이 물었다.
"뭘?"
"내일 경주들..."
"내가 보면 뭘 알아? 괜히 김샐까봐 네가 보기 전에 안 펼쳐봤어."
"참 별나기도 하네. 책 좀 먼저 본다고 김샐 건 또 뭐야?"
"나 같은 놈이 괜히 먼저 초칠일 없잖아? 네가 한 장씩 한 장씩 넘겨가며 그림을 그려내야지. 안 그래?"
종원은, 애써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규태를 흘낏 보며 고개를 갸웃해보이고는
"가서 씻고 와. 그동안 대충 한번 훑어볼게."
했었다.  규태는 다시 두 눈을 껌벅이더니
"그럴까? 그럼...?"
하고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종원은 예상지 하나를 들고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규태는 그런 종원을 내려다보며
"근데 말야. 지난번에도 내가 말했었지만... 넌 진짜 승부를 벌이는 일엔 대단한 놈이야. 그지?"
하다가 종원이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예상지를 들여다보는 일에만 열중이자 옷을 벗다말고 종원 앞에 다시 앉아 손가락들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려대며
"네가 딱 한번 승부를 해서 돈을 따낸 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지난주에 내가 11경주는 대끼리가 틀림없을 거라고... 대끼리 한방으로 왕창 때려 넣자고 했을 때 말야... 그때 난 정말 11경주를 대끼리로 끝날 경주로 확신하고 있었거든? 야! 나도 경마 일년했으면 나름대로 경마 보는 눈도 있고... 또 뭐야... 그래. 네가 잘 쓰는 말처럼 나름대로 감도 있고 그런 거 아냐? 그런데 넌 고작 이틀 경마장 따라왔던 놈이잖아? 그런 네가 대끼리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면서 대끼리로 들어오면 배당만큼 돈을 물어준다고 했을 때... 비록 11경주에 내말대로 왕창 때려 넣지도 못하고 돌아왔지만... 돌아오면서 제발 대끼리로만 들어와 주라 했었거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