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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 성숙한 30대 남녀가 이토록 서로를 배려하며 활동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의 주인공인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오늘 일요 경마에서 적지 않은 돈을 무모하게 날린 이후 집으로 가는 길은 형극의 가시밭길이었던 것이다. 그 괴로움을 이 주막 저 주막에서 한 줌씩 뿌려가며, 때로 당나귀 등 위에서 곡진한 시조를 읊어가며, 머나 먼 집으로 가긴 가고 있었다. 옛 사람들은 벼슬자리에서 쫓겨나서, 반대파의 모함으로 귀향을 가며, 극심한 흉년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효도 시늉을 내기도 전에 떠나버린 부모님을 기리며, 비감한 심정으로 저 하늘의 휘영찬 달을 바라보았던 것인데, 백팔만은 오로지 날아간 돈 생각에 가슴을 쥐어뜯으니 그 슬픔의 격이 옛사람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아니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인생의 비애를 맛보는 면에 있어서는 옛사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백팔만은 인생은 어찌하여 잃고 벌고의 연속이며, 그 흐름이 지난 시절의 영고성쇠와 무에 다른가 하는 철학적인 깨달음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느꼈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철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잠깐이고, 내일이면 어제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 채 또 다시 지금까지의 삶의 패턴을 반복하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백팔만으로 말하자면, ‘말에서 말’로 ‘주식에서 주식’으로 그렇게 끊임없이 돈과 시간과 미래를 걸어왔던 것이다.
마돈걸이 백팔만 오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얼른 들어가 주무시라고 일렀지만, 담대하지 못한 성격으로 보아 슬픈 마음으로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마돈걸은 자신이 그 오빠 생각을 한다 해서 오빠에게 무슨 득이 되는 게 아니고 기껏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마돈걸은 그런 쓰잘데없는 동정심으로 자신의 쾌락이 방해받는 걸 무척 싫어했다. 인류 역사상 좀 난 여자들은 다 마돈걸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