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33) - 영혼이 없는 남자의 몸

↑	우영창(소설가, 시인)

  유세련은 마돈걸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의 알몸을 감싼 대형 타월이 어째서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붙어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타월의 양 끝을 묶지도 않았고 손으로 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몸의 라인을 살려가며 앞뒤로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냐 말이다. 결론은 그녀의 터질 듯 솟아오른 젖가슴이 타월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타월도 남자가 벗겨줘야 하는 건지 유세련은 알 수가 없었다. 드레스의 뒷자크를 아래로 내리고 블라우스의 뒷단추를 하나하나 풀어준 적은 적잖이 있지만 타월을 벗겨준 적은 없었던 것이다. 여자의 옷에 달린 단추는 얼마나 앙증맞고 매끈매끈한지 그 감촉을 잘 기억하고 있는 유세련이었다.
  남자의 이러한 갈등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돈걸은 다리를 꼰 채 계속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여자의 허벅다리가 서로 겹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일시적인 닫힘이고 유혹하는 방어술이지만, 다리를 반대편으로 꼴 때 또 일시적인 열림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장쾌한 전투로 안내하는 손짓 내지는 허벅짓으로 보아야 했다. 그녀의 허벅지를 꿀벅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표현한 게 아니다. 그녀의 양 허벅지는 그 둘레와 탄력성과 빛깔과 움직임에 있어 그 어떤 비교대상도 허용하지 않을 그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존재란, 존재의 의미란 저런 게 아닐까, 유세련은 속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저 허벅지가 가공할 근력으로 그의 옆구리를 조여 올 상상을 하자 땀이 돋고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마돈걸은 연기를 내뿜으며 남자의 벗은 상체를 잠시 감상하고 있었다. 식스팩은 아니지만 똥배가 솟아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일정 점수를 받을만했다. 사실 요즘은 사장님과 위원장님들뿐 아니라 말단공무원이나 잡역부나 영세 자영업자나 심지어 가난한 예술가들까지       어찌 그리 똥배를 자랑하는지 민망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장님과 위원장께서 접대 골프를 치고 직원들을 통솔하며 유명한 산과 정비된 강의 산책로를 도는 동안 그 빈곤한 층들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정부와 정책을 성토하느라 다리를 잠시도 놀릴 틈이 없었던 게 분명하였다. 거기다 고물차들은 왜 또 그리 끌고 나오는지 도로는 미어터지고 다리들은 제자리에서 급하다며 덜덜 떨기만 하고 있으니 똥배만 나오는 게 이상하달 수 없었다.
  아직 나이가 있는데다 워낙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분탕질을 하는 유세련은 살짝 귀엽게 나온 배에 가슴 근육도 적당히 붙어 있어 성적 매력이 훅 풍겨왔다. 마돈걸은 일주일에 이틀은 몸을 풀지 않으면 왜 살아야 하는지 마음이 괴로운 여자였다. 텔레비전에서 명사들이 하는 인생론 얘기에 제일 하품을 많이 하는 여자가 마돈걸이었다. 마돈걸은 영혼, 참된 정신, 이런 말을 제일 싫어했다. 뭘 좋아하는지는 본인이 잘 알고 있었는데 영혼이 없는 남자의 육체도 그중의 하나였다. 마돈걸은 유세련에게 그만 쳐다보고 씻으라고 명령했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