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신사(32) - 여자의 문신은 앞뒤로 숨 쉬는가

↑	우영창(소설가, 시인)

  천하의 바람둥이 유세련은 마돈걸이 얼른 다가와 뒤에서 군용 스푼처럼 포개지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기척이 없어 돌아보니 마돈걸은 소파에 앉아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희고 보송보송한 대형 타월로 알몸을 감싼 상태였다. 남자도 타월로 허리 아래를 감싸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영화를 보면 마피아들이 사우나에서 그렇게 하고 사업 얘기를 나누었다. 한국영화에서는 상체에 문신을 하고 있는 자들이 주로 나와 누군가 시비를 걸어달라고 눈에 힘을 주고 다녔다. 유세련은 문신이라곤 왼쪽 팔뚝의 쇠스랑 하나와 가슴골의 나비 한 마리가 다였다. 온몸에 문신을 새겨 약간만 움직여도 청용이 꿈틀거리거나 전갈이 기어가는 그런 놈들이 있지만, 유세련은 그런 류들은 매우 언짢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대짜 문신은 공중탕용으로 누구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공포심을 주면 안 되는 것인데, 유세련의 문신은 여자가 만져보고 쓰다듬어보고 `징그럽다아` 하고 눈을 흘기며 갖고 놀기에 딱 알맞은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그의 문신, 쇠고랑에 깜짝 겁먹은 표정을 짓기도 하고 황금빛 나비에서는 흥분가루라도 떨어지고 있는 듯 만져보고 맛도 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돈걸만은 유세련의 문신 보기를 그야 말로 사인펜 자국 보듯 했으니, 카드 독촉장의 서명과 직인이 이보다는 더 권위가 있었을 것이다.
  마돈걸도 문신이 있었다. 앙증맞은 배꼽 밑에 그러니까 아래의 거웃이 올라오다 그치는 그곳에 작은 붉은 하트 하나가 있다. 거기에 화살표라든가 레이스 장식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알몸을 뒤집으면 왼쪽 엉덩이 한가운데에 메두사의 머리 같은, 성난 제우스의 부르짖음 같은, 포식자의 잔혹한 아가리 같은 괴물이 새겨져 있었다. 그 괴물은 푸른색으로, 붉은 하트와 앞뒤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천사와 악마의 양성이 앞뒤로 배치되어 있어 상대로 하여금 감정의 깊은 골을 급격히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다. 유세련은 일찍이 그 두 문신의 위력을 느낀 바 있었고, 오늘이 교접 첫날이 아닌데도  다시 두려움이 음습해오는 걸 느꼈다. 붉은 하트에서 심장이 불타오르는 기쁨을 보았다면 엉덩이의 푸른 괴물에선 피를 빨리고 살을 씹히는 두려운 쾌감을 확인하였다. 오늘도 그러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유세련은 흥분과 함께 온전히 제물이 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한편 마돈걸은, 유세련은 사랑할 수 없는 남자이고 의지할 수 없는 남자이고 배울 거라곤 10원어치도 없는 남자라고 보았고, 허나 육체 하나만은 싱싱하여 일시적인 충족은 가능하다고 보았다. 차가 기름을 먹는데 아무 주유소면 어떤가. 기름을 채우면 기름 파이프일랑 버려두고 떠나면 되는 것이다. 일단 배부를 때까지 먹어보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생각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