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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추상화가라나, 그리고 뭔 회화대전 심사위원이라나, 뭔 미술대학원 학장이라나, 뭐 그런 늙수레한 인간들과 카페인지 뭔지 하는 데서 쓰잘 데 없는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곁에서 다소곳이 교양 있게 술을 따르던 여급에게서 미적지근한 느낌밖에 얻지 못한 배삼지 국장께서 오늘같이 외로운 날 마돈걸이 둥근 달처럼 머릿속에 떠오른 건 피치 못할 일이었다. 하여 배 국장은 그 늙다리 아티스트들과 헤어지자마자 신사동 골목에 우뚝 선 채로 휴대폰에서 유 주임을 찾아내 전화질을 한 것이다.
배국장의 휴대폰엔 유 주임 외에도 안 사무관, 궁 이사장, 허 사무국장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안’이란 얼굴이 반반하다 해서 붙인 거고 ‘궁’이란 궁둥이가 볼 만 하다고 해서, ‘허’는 꿀벅지인 관계로 갖다 붙인 것이었다. 할 일 없는 여편네가 남편 휴대폰을 자꾸 만지작거리는 게 신경 쓰이기도 하고, 여고생 딸아이가 벨소리니 뭐니 하며 설정을 이것저것 해대느라 아빠 휴대폰을 수시로 탈취해가기에 이 세상 여자 이름들을 함부로 저장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 그러니까 가슴이 특별했던 기억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 밤, 배 국장은 ‘유’주임에게 전화질을 하자마자 연결이 되자 가슴이 뛰었다.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을까?”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배 국장이 문의하자 마돈걸은 “응? 지금?” 하고 곤란한 듯 대꾸했다. “있는 곳을 알려주면 내가 그리로 가지.”하고 배 국장이 애가 달아 서둘러 말했고, 마돈걸은 “너무 늦었어. 국장님, 낮에 한 번 전화 주실래?” 하고 병과 약을 동시에 주었다. 이 순간 유세련은 전화를 하고 있는 마돈걸의 뒤에 바짝 붙어 한 손으로 ‘유’ 즉 젖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외국영화에서는 흔히 연인들이 베드에서 전화를 받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하고, 한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남은 한 사람은 애무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애인과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세련도 무료 영화를 좀 본 관계로, 전화를 하고 있는 여인에게 남자가 뒤에서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마돈걸은 전화에다 대고 간간이 비음을 섞어 얘기하고 있었다. 배삼지 국장은 그 비음이 자기 때문인 줄 알고 비장한 감정에 휩싸였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