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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감독이라면 회피할, 어쩜 진부하다고 여길 그런 종류의 작업이었다. 물론 어떤 배우를 쓰고 어떤 형식으로 변주를 해나가고가 상당히 중요해 질 수는 있었다. 남녀 관계라는 영원한 테마를 새롭게 변주 재해석하는 게 예술가의 주요한 자질이자 임무일 수 있었다. 그런데 모델 고대해에게 이렇게 좋은 식사를, 특히 한식 에이코스를 접대하고 술잔을 건네고 뜸만 들이는데 진짜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 남녀 사이의 일 외에 순수하게 일 관계로 할 얘기가 있는지 그런 게 있기나 한지 궁금해 할 법도 한데, 도통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안절부절못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남자는 이제는 말해도 된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넣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밝힌다’ 뭐 그런 류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해서 작품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하고 남자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만 작품이라고만 말함으로써 남자는 무슨 작품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겨놓았다. 로맨스와 리얼리즘이라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건지 전혀 새로운 작품이라는 건지 거기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다만 작품이라고 말함으로써 커다란 의문을 남기려는 듯했다.
“작품을요?” 고대해가 맞장구를 치자 “그렇습니다, 차기작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하고 이것이 차기작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전작이 있었다는 거고 그 전작이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라는 걸 은연중에 강조하는 말투였다. 그렇다면 그 전작이 무엇이냐 이러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시리즈물인가요?” 고대해가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다움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