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윤 한 로
땀을 뻘뻘 흘리며
무더위와 싸우느라
짧은 여름이 훌쩍 갔다
허랑방탕을 싹 걷어치우고
허옇게 똥배를 드러낸 밤
갈라진 콘크리트 틈 속에서
귀뚜라미가 운다, 이 사람은
기교와 가식을 떨쳐버리고
쓰고 싶은 말을
꾸밈없이, 정직하게 쓰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어떤 말보다 얼마나 기뻤는가
가을 문턱에
발구락이 걸렸다
시작 메모
언제부턴가 쓰는 게 처음보다 덜 성실하단 얘기도 설핏 들었지만, 전에 쓴 시와 시작 메모들을 들춰보니, 내 것도 꽤 괜찮은 것들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추켜 올라간다. 요즘엔 편견, 고집, 망상, 주책 따위를 버리려고 힘 쓴다. 겸손코자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람이 사람다워야 하잖는가. 욕심도 있고, 단점도 있고, 손구락질도 당하고, 구설수에도 오르고, 무너지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기교와 가식만은 떨지말자. 내 허옇게 똥배는 드러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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