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윤 한 로



비스듬
바지랑대 받친 빨랫줄에
지아비 큰 저고리 작은 저고리 가운뎃 저고리
한갓 오막살이 아녀자 널어놓은
빨랫조가리일지언정, 건듯 소슬바람 불어  
이 저고리 저 저고리 펄럭이니
오, 몹쓸,
저 빨래에 대면 내 글씨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렇게 기쁠 수가
귀양살이 구 년을 먹고야
추사, 비로소 눈뜨네



시작 메모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9년, 또 북청에서 2년 귀양살이를 하고, 일흔이 다 되어 쓴 ‘殘書頑石樓(잔서완석루)’란 글씨는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 같다고들 한다. 심지어 세상을 뜨기 사흘 전에 썼다는 봉은사 ‘板殿(판전)’ 글씨는, 애들이 지저분하게 흙장난하던 손으로, 마악, 쓴 글씨 같아, 문외한이 보기에도 너무 아름답다. 거기에서는 무엇보다 저 잘났다는 마음, 최고 명필이라는 마음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저렇게 쓸 수 있을까. 다 내려놓았구나! 이거이 대가 중 대가만이 다다를 수 있는 졸박(拙朴)의 경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