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칼럼-전문지 발행 중단 헤프닝, 명분도 실리도 없었다

‘위기는 곧 기회’란 말이 있다.
모든 상황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함께 찾아온다는 뜻이다. 기회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혹은 위기를 유리한 상황으로 어떻게 반전시키느냐는 승자만이 갖는 노하우다.
경마산업이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단순히 입에 달고 다니던 ‘언젠가는’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격동의 시기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이다. 한국마사회를 위시한 서울마주협회와 과천마주클럽, 조교사협회, 기수협회, 경주마생산자협회, 전국경마장관리사노조, 그리고 경마전문지 발행사와 각 유통회사, 판매인들까지 이 같은 혼란정국에 함께 빠져들고 있는,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상황이다.
뭐부터 손댈지,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경마팬들은 발길을 돌리고 매출액은 ‘반토막’ 났다.
유일한 경마시행체, 한국마사회도 어떻게 손 써야 할지 속수무책이다. 이를 관장하는 농림부라고 묘책이 있을까.
경마산업을 둘러싼 각 단체가 이처럼 첨예하게 갈등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변화’ 때문이다. ‘내’가 변하려니 ‘너’도 변해야 할거고, 그게 싫은 상대방은 발버둥치며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발전을 위한 변화면 좋겠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치는 너무 낮고 리스크는 크다.
출마책자개선사업을 두고 빚어졌던 전문지 발행사와 마사회의 갈등이 마침내 전문지 발행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매주 습관처럼 자신만의 전문지를 사보던 경마팬들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뒤통수를 맞았다.
지난 5월 느닷없이 출마책자개선사업안을 발표한 한국마사회는 ‘경마팬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서비스 개선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십년 간 지금과 같은 포맷의 전문지를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인 대다수 전문지 발행사들은 마사회의 이 같은 계획에 ‘생존권 사수’를 내세워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했고, 갈등 수위는 개편되는 출마책자발행 시기가 다가오면서 더욱 높아졌다. 지난 7월의 제주경마 미게재 사태와 마사회 본관 앞 시위는 사상 유례 없는 전문지 발행 중단으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에는 각 지점 내에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경마전문지판매인협의회나 지점 밖 유통을 담당하는 유통회사까지 가담해 발행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마사회에 더욱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마사회는 발행 중단한 전문지업체에 대해 관련 규정을 근거로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4개월까지 마방 출입금지 및 마사회내 판매금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전문지 발행사는 출마책자개선사업이 백지화되지 않는 한 발행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어떤 식으로 결론 나든 서로 깊은 상처를 안게 된 것이다. 애꿎은 경마팬들이 입을 피해야 말할 것도 없다. 일부에서는 ‘전문지가 발행되지 않으면 경마가 열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까지 하고 있으니 문제의 심각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금의 상황은 이곳에 몸담고 있는 한 일원으로서 참으로 개탄스럽다. ‘경마팬 서비스 최우선’을 외치다가 경마팬을 담보로 한 행위를 앞장서서 해야한다는 게 낯이 서지 않는다.
화물연대 파업이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설득력을 잃은 것도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경마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치논리로만 생각됐던 상생의 원리가 여기에도 필요하다.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으며’ 모두가 이길 수 있는 윈윈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무조건’ 안된다는 식은 곤란하다. 당장은 싫더라도 대의(大義)를 생각한다면 어느 한 쪽이 한 발 물러서고, 대신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지혜가 발휘돼야 할 것이다.
마사회의 출마책자개편사업은 그 ‘저의’나 밑바탕의 ‘계산’이 어떠했든 간에 경마팬 서비스 차원에서 적극 환영받아야 할 내용이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마사회가 절차상 다소간의 실수를 했다손치더라도 그 뒤에는 경마팬이 거대한 산처럼 지지하며 버티고 있다.
경마팬의 선택으로 살아가야 할 전문지 발행사에게 명분이 없는 것이다. 발행을 중단한다는데도 마사회는 꿈쩍도 않는다. 11월에야 인쇄 배포할 예정이었던 개선된 출마책자는 오히려 시기를 앞당겨 이번주부터 나왔다. 박스형 상대비교 전적 프로그램 형태로 말이다. 아무런 실리도 없었던 셈이다.
결국은 원칙이 중요하다. 변칙은 임기응변이 될 수는 있어도 원칙을 넘어서진 못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경마문화 독자와 경마팬 모두에게 대단히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