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일일 매출액이 1년 6개월 여 만에 4백70억 원대로 내려앉았다. 2001년 1월, 경마로 치면 한창 비수기면서, 그것도 하루 11개 경주만 열렸던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일 기록 경신이 이어졌던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속된 말로 ‘반 토막’난 셈이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쏟아 붓던 비 때문이다, 최근 경주편성이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서다… 지난주 하루만의 결과를 놓고도 다양한 분석이 즉흥적으로 나왔다.
다 맞는 말이다. 집을 나서려다 비 때문에 발길을 돌렸을 거고, 재미없는 경주에 굳이 돈을 걸어야하나 생각도 됐을 거고, 또 경제적으로도 모두가 너무 어렵다.
주변 환경도 시시각각 급변해 경마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보조를 맞춰야 그나마 숨통이 트일텐데 그러기엔 이 곳의 성향이 너무 보수적이다. 새로운 것에의 지향, 시도, 시행착오… 이런 것들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단 기간 내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던 것처럼 무너지는 속도도 이에 못지 않다.
경마를 하나의 산업으로 본다면 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경주마 생산 분야가 너무 취약해 경쟁력, 자생력, 위기관리능력 이런 것들을 기대할 수 없는 게 지금 우리 경마의 상황이다.
쉽게 생각하면 경주질이 형편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생산에서 경주시행, 마권발매, 그에 다른 수익과 재투자, 그리고 우수마 생산이라는 싸이클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채 마권 발매 분야만 훨씬 앞서 갔던 것이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하필 지금인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언젠가는 바닥이 드러날 것이었고 카지노, 로또 등 메머드급 경쟁산업이 등장했는데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만 해온 경마산업이 실기한 것은 분명하니까.
경주마가 부족해 분할되는 경주는 부지기순데 신마가 입사하면 들어갈 마방이 없다고 한다. 경마시행계획 상으로는 1군 경주가 열려야하는데, 나올 말이 없어 하위군 경주를 쪼갠다고 한다.
1천만원 짜리 말들끼리 붙어야 하는데 1억 짜리 말이 끼어들면서 재미가 없다며 다시 1천만원 짜리를 들여오라는 소리도 경마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한다.
마권 종류는 기껏해야 2-3가지고 그 중에 골라봐야 1점대 배당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는 본전 밖에 돌려주지 않는 1.0배 짜리도 있다.
레저세, 특소세, 주민세, 교육세, 농특세 등 내야하는 세금도 많다. 돈 딸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경마 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성인 갬블산업이 그 수를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쯤되면 경마산업의 경쟁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경마인구와 그에 따른 매출 감소는 어느 한 분야만 개선된다고 해결될 즉흥적인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우선 경주질부터 끌어 올리자. 우수한 경주마가 공급돼야 경주질도 높아질 수 있는 거지만 지금 있는 자원으로도 경주편성이나 경주계획수립 단계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방안이 있을 것이다. 경주마 자원이 시기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면 그때마다 경주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전체적으로 경주마 수가 부족하다면 경주수 자체를 축소해도 좋다. 최소 출전두수로 한 경주라도 더 해서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말이다.
경주질 향상은 곧 베팅의 묘미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액으로도 고액배당을 노릴 수 있게끔 경주편성도 박진감 있게 이뤄져야 하고 마권종류도 그만큼 다양해져야 한다. 높은 배당에는 고액 베팅이 어려운 만큼 경마를 건전하게 즐기도록 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수 외산마 도입은 더욱 박차를 가해 전체 외산마의 수준을 끌어올림으로써 국산마 생산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 특히 생산과 관련해서는 일본처럼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국고로 징수해 순수 경주마 생산분야에만 특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마가 산업으로써 온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느냐는 바로 활발한 경주마 생산과 국산마의 안정적인 보급에서 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급률 인상, 경마상금 확대 등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경마산업의 당면과제다.
일일 입장객이 20만 명을 넘어서고 하루 매출액만 9백억 원을 넘었던 게 바로 1년 전이다. 지난주 매출액 4백70억 원은 세상이 그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경마산업은 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들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혼자 뒤에서 왜 모두들 앞서가냐고 징징대고만 있을 것인가.
경마시행에 따른 마사회의 손익분기점은 2백50억 원이다. 아직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경쟁에서 뒤처질 소지가 다분한 사람이다.

작 성 자 : 이희경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