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는 지난해까지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경주중계를 사설경마 확산을 이유로 올 4월부터 녹화로 전환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설경마와 유사한 성격을 띠는, 혹은 그로 전락할 개연성이 충분한 마권구매대행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철퇴도 가하지 못해 애매한 경마팬들의 피해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황으로 제공할 수도 있는 경주중계를 10분 후 녹화방영케 함으로써 안방에서 경마를 즐기는 재택 베팅족들에게 불편을 끼치는가 하면 마권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공제되고 있는 세금 외에도 별도의 이용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래저래 손실이 크다는 뜻이다.
물론 선택은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문제는 베팅과 관련한 부분이 과도하게 팽창하면서 실질적으로 경마산업의 버팀목으로 작용해왔던데 반해 서비스 분야는 훨씬 뒤떨어져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다양하지 못하다는데 있다.
기껏해야 전화베팅 만이 베팅의 편의를 돕는 관련 서비스라 할 수 있고, 최근에 와서야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정보 제공이 이뤄졌던 것이다. 공중파보다는 못하지만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을 통해서라도 경주결과를 확인하고 경주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인데, 녹화중계라 그런지 김 빠진 맥주를 마시는 듯한 기분이라며 별로 유용하게 이용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사설경마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주생중계를 폐지하고 녹화중계로 전환한 것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다. 사설경마 적발 건수도 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설경마를 뿌리뽑기 위한 근본 대책은 경마생중계 폐지라는 단편적 발상으로는 마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이름 있는 경마 인터넷 사이트들이 앞다퉈 마권구매대행서비스를 시작했다. 마권구매대행업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마사회는 ‘사설경마다’‘유사마권발매행위다’하면서 제재 방안을 찾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해당 업체들은 제재를 받기는커녕 우수 고객 수수료 우대혜택, 사이버 예상대회 개최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공격적으로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유사 업체들이 부쩍 증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유명 인터넷 사이트마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추세다.
마권구매대행서비스는 어떻게 보면 금융기관의 각종 재무관리서비스나 업무대행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이용객의 편의를 돕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건당 7%에 이르는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한다는 측면에서, 또 제도화되지 못해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시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여타 산업의 부가서비스와는 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업체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이나 신속성도 시행체와 비교할 때 크게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왜 시행체에서 나서지 않는가. 전화베팅은 괜찮고 인터넷베팅은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베팅과 관련된 부분만 강조할 위험이 있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마사회의 주장이지만 사실 경마팬들이 체감하고 있는 베팅 환경은 그다지 흡족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마권구매상한선제 폐지, 실시간경주동영상 제공 및 경주생중계, 인터넷베팅제 도입 등은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비춰볼 때 결코 앞선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경마산업 분야만 뒤떨어지고 있다.
사설경마가 걱정된다면 환급률을 높이고 마권구매상한선제부터 폐지하는 게 순서다. 환급률 인상을 추진하겠다며 농림부에 건의했다고 거창하게 떠들더니 그 결과는 온데간데없고 새로 도입되는 복연승식의 환급률은 복승식과 마찬가지로 72%란다. 환급률에 차등을 두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복연승식마저 최저 환급률인 72%를 적용하는 것에는 반대다. 엄연히 복승식과 연승식의 개념이 복합된 승식인데 왜 환급률만 복승식의 것을 따온단 말이다. 경마의 폐단을 논하기에 앞서 세계 최저 수준의 환급률과 그로 인한 경마팬들의 손실, 그리고 결국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을 생각은 왜 하지 않는가.
경주마 생산에서 비롯돼야 할 경마산업이 베팅부문만 과도하게 커졌다고 해서 그와 관련된 서비스 정책마저 소극적이 되어선 안된다. 경마시행은 합법화 해놓고 불편 사항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등한시한다면 이는 경마시행체와 관리감독을 맡는 정부의 직무유기다.
경마팬의 피부에 직접 와닿을 수 있는 획기적인 서비스 개선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취임사에서 ‘경마팬을 왕으로 모시겠다’던 박창정 회장의 약속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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