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경 칼럼-높아지는 제재 수위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마사회 심판실의 강도 높은 제재가 연이어 발생해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지난주 ‘무비동자’와 ‘언어카운티들리’에 기승했던 유훈·임대규 기수가 각각 기승정지 8일과 3일을 받은 것에 대해 경마팬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압도적 인기를 모았던 ‘무비동자’의 경우 입상에 실패하자 심판실은 유훈 기수의 페이스 판단 미스를 이유로 기승법부적절을 적용, 기승정지 8일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제재를 결정했다.
또한 AJC트로피에 출전했던 ‘언어카운티들리’는 시종일관 우승마 ‘골드머니’와 선행경합을 펼친 끝에 2마신 차 준우승에 그쳤고 심판실은 기승한 임대규 기수에 대해 무리한 경합을 이유로 기승정지 3일을 내렸다.
위의 두 건은 상황에 있어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적절한 징계조치였는지 여부와 경마에서 심판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둘 것인지에 관해 앞으로 많은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각 경마관련 인터넷 홈페이지에 아직까지도 찬반양론이 뜨겁게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승부 의지 없이 말을 제어, 소위 일부러 ‘빼먹었다’는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기수에 대한 기승정지 8일은 다소 과하지 않느냐는 점과, 심판실 스스로도 기수의 최선을 인정하면서도 ‘무리한 경합’이라는 다소 애매한 사유를 꼽아 제재를 내리는 것은 조교사나 기수 등 경마 창출자의 고유 작전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점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다.
‘무비동자’의 안해양 조교사는 기수의 미숙한 레이스 전개는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전혀 없었던 수습기수의 실수에 대해 과한 제재를 내린 것을 아쉬워한 반면, ‘언어카운티들리’의 임대규 기수는 좀더 강경한 입장이다.
애초부터 우승이 목표였기 때문에 선행작전을 감행했던 것이고, 이 과정에서 상대마인 ‘골드머니’가 선행에 나서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경합을 펼친 것이며, 더욱이 마필 능력상 1분 56초대면 우승이 가능하리라는 계산이었지만 그 이상의 주파기록(1분 55초 6)을 작성하고도 진 것은 상대마가 잘 뛰었기 때문이지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제재를 결정한 심판실이 이 같은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심판실의 최근 강도 높은 제재의 배경 뒤에는 제재 강화를 통한 공정경마구현이라는 목적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승부를 했다, 안했다”의 차원이 아니라, 기대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또 그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발견됐을 때는 최선 승부 여부와 관계없이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선에서 제재를 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교사나 기수의 고유 작전권 인정과 공정경마구현이라는 두 가지 과제 속에서 적절히 경계를 넘나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하는 것이 바로 심판의 역할이다. 모호한 경계 속에서 심판이 중심을 잡지 못하게 되면 앞으로도 심판의 결정에 관해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여타 다른 스포츠 종목도 마찬가지지만 경마 분야는 특히 더 제재 기준이나 경계가 모호해 심판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말의 컨디션이 갑자기 악화됐든, 조교사가 작전 지시를 잘못했든, 기수가 경주 도중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든 간에 모든 경주, 모든 경주마에게는 돈이 걸리고, 따라서 경마소비자들의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을 때는 이를 감시하는 심판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심판의 권위를 인정해 주자. 다소 간의 의견차와 시각차가 있다 하더라도 일단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수긍하고 납득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바람직하다.
심판이 바로 서지 않고 또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모든 경주와 모든 경주의 기수, 조교사는 더욱 더 의심의 한복판에 설 수밖에 없다.
대신 심판위원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또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해야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경마에 있어 심판은 기수, 조교사 못지 않게 경마팬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으로 꼽혀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같은 사안을 두고서도 ‘어느 기수는 심판이랑 친하니까’ ‘누구는 심판에게 찍혔으니까’라는 식의 선입견이 작용하는한 심판의 권위도, 공정경마구현도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현명한 판단으로 스스로 권위를 세워가는 심판과 이런 심판의 기능을 인정하고 결정에 수긍하는 기수, 조교사 및 경마팬들의 소양의식이 갖춰졌을 때라야 비로소 경마의 공정성은 확보될 수 있다.
공정경마구현이 시급한 한국경마에서 심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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