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의 앞물결은 뒷물결에게 밀린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한시대를 풍미한 명마라도 새롭게 가세하는 명마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명마들이 후대의 명마에게 밀려나는 게 아니라 핸디캐퍼 손끝에 밀려나는 것 같다.
90년대 이후 최고 명마를 대충 헤아려보면 가속도, 고대산, 대견, 신세대, 풀그림, 청파, 다함께 등이 있겠다. 가속도는 강제 은퇴했으니 논외로 하겠지만, 위에 언급한 말 중에서 과부담에 시달리지 않은 말이 없고, 비교적 큰 부상 없이 오래도록 잘 뛴 말은 대견과 신세대 밖에 없다.
대견은 경마대회에서 거의 매년 61kg∼64kg의 등짐을 질 정도로 핸디캐퍼들의 십자포화(?)를 받았지만 말이 워낙 건강하고 명마라서 11세까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신세대는 과부담이 예상될 경우 출전을 포기하는 마주와 조교사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큰 부상 없이 지금껏 현역으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핸디캐퍼들이 절대 은전을 베푼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상당수의 경주를 핸디캡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경주마 자원이 빈약한 관계로 어지간히 핸디캡 편차를 두어도 능력마가 이기곤 한다. 그렇다보니 능력마는 점점 더 많은 등짐을 받고 달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말이 망가져서 무너지거나, 더 많은 부담중량을 피하기 위해 알아서 기는(?)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핸디캡 경주를 시행하되 명마를 죽이는 시스템이 되지 않으려면 지난번에 말했던 경마대회처럼 군체계는 무시하고, 연령, 경주거리, 순위상금을 제외하고 모두 오픈해서 비슷한 수준의 말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프리핸디캡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경주조건을 프리핸디캡 57kg 이상, 54∼56.5kg, 54kg 미만으로 한다면 명마라고 하더라도 과부담중량에서 허덕거리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주체계를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핸디캐퍼의 능력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핸디캐퍼는 경마를 가장 잘 알아야 하며, 경주마의 능력을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핸디캐퍼들이 부여하는 핸디캡을 보면 과연 이들이 핸디캡 경주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별정Ⅰ-C형은 마령중량에서 수득상금에 따라 부담중량이 증감되고, 핸디캡은 마령중량에서 능력에 따라 부담중량이 증감된다고 생각하는 상식 이하의 핸디캐퍼는 아마 없을 것이다. 아니,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그렇게 나타나는 것 같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과거 핸디캡위원이었던 사람이 경마전문지 예상위원으로 전업을 했지만 이렇다할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펜을 접고 말았다. 이 말은 과거의 핸디캐퍼였던 사람이 현재 경마 전문지의 예상위원보다도 말을 모른다는 뜻이다. 핸디캐퍼들이 그때보다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없지만,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혼을 담는 경마, 철학이 있는 경마를 시행해 줬으면 한다. 과거에 ‘승리마에게는 무조건 +1kg 더’를 외치던 이들이 얼마나 한국경마를 황폐화
시켰는지 반성하면서 말이다.


작 성 자 : 김중회 rin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