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대회를 구조조정하자.
경마대회의 문제점은 그동안 누누이 지적돼왔다. 이제라도 경마대회를 구조조정 해 경마의 묘미를 배가시켜야 한다. 대회 수를 줄이고 상금을 대폭 인상해 원래의 목적을 찾게 하자. 그리고 출전자격을 강화해 강자들만 모아놔야 한다. 현행 체계는 시행체인 마사회와 타이틀 언론사만 껄껄대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경마대회는 ‘능력마들끼리의 치열한 우승다툼’이어야 하는데 실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경마대회가 갈수록 재미가 없어져 팬들은 경마대회를 외면하고 있다. 베팅보다 흥미진진한 승부를 찾았던 팬들은 매번 벌어지는 ‘허접 레이스’에 하품을 참기 바쁘다.
지난해 경마대회는 모두 18개. 올해는 오히려 25개로 늘어났다. 대회는 늘어나도 승패는 뻔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전문가가 아니라 경마 1년 차의 초보팬들이 봐도 누구나 우승마를 점칠 수 있다. 10마리 이상 뛴 대회가 반도 안되고 8마리, 9마리 대회도 간간이 나온다. 지난해의 경우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마주협회장배와 마사회장배는 8마리가 단촐하게 귀족(?) 레이스를 펼쳤다. 농림부장관배와 SBS, 스포츠조선배도 8마리 대회였으며 코리안오크스와 내외경제배는 9마리가 나와 경주의 박진감을 떨어뜨렸다. 지난 2일 열린 문화일보배 경마대회도 12마리가 출전했지만 사실 경마대회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편성이었다.
7∼8마리 경마대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출전마중에는 항상 부진마들이 끼어있어 승부는 당연히 2∼3마리의 싸움으로 결정 나게 마련이다. 지난해 ‘다함께’와 ‘해암장군’의 연속우승은 결코 엄청난 능력 덕분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현상도 생겨났다. 경마대회의 매출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다. 오히려 특정대회에선 매출액이 늘어나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워낙 ‘뻔하니까’ 조심하던 뭉칫돈들이 들어온 탓이었다. 마필 관계자들도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일반경주보다는 상금이 많기 때문에 ‘쏴 먹는’ 마방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조교사들은 말을 내놓기를 꺼렸다. 각 마방에 1∼2마리뿐인 능력마가 우승보장도 없는 경마대회에 나갔다가 기가 꺾이느니 일반경주에 나가는 게 훨씬 나았다. 그게 상금 챙기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경마대회 출전 마리수가 부족한 것은 경주마 생산과 연계된 부가가치의 매력이 떨어지는 점과도 연관이 있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영국 등 경마선진국과 달리 경마대회를 통해 배출된 경주마가 우수 씨수말이나 씨암말로서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개인마주제 도입 초기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이 점은 마주의 경마대회 출전 의욕을 꺾는 요인이다. 경마선진국에서 마주가 경주마를 내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우수 마필의 검증과정에 있다. 세계 정상급(G1 레이스)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말은 번식마로서의 ‘제2의 생활’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매년 국산마와 외산마 도입 시기가 정해져 있는 만큼 이 시기에 도입된 말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승군하는 시점에 하위군 경마대회를 치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산 개별구매마들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지난해 11월 동아일보배 경마대회(외국산 2군)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출전마는 고작 7마리뿐이었다. 그나마 국산마가 두 마리 끼어있었다. 승패는 뻔했다. 개별구매마 3마리의 싸움이었다. 다른 말들과의 능력차이가 워낙 심해 다른 변수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승부가 너무나 뻔해 경마대회라고 할 수 없었다. 이변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딱 ‘2조합’만 사면 누구라도 맞힐 수 있었다.
경주마 수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한국경마는 하루빨리 경마대회를 줄여 희소가치를 높여야 한다.
서병기 스포츠서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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