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있은 디지틀조선배의 2·3위 판정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하기 힘든 미세한 차이였음은 물론 마사회가 사진판정 결과로 제공한 전광판 모니터로도 그 차이를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가열 양상을 띠고 있다.
경주 직후부터 한국마사회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 경마관련 사이트에는 경마팬들의 불만이 접수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요지는 마사회의 납득할만한 해명이나 판정 기준 등이 명확히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순위판정을 결정한 마사회 경마팀 책임자는 1000분의 1초까지 판가름할 수 있는 순위판정용 디지틀카메라에 의하면 미세하나마 두 마필 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공정경마시행을 위해서라도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건과 관련해 본질적인 문제로 파고 들어가면 누가 이겼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신력 있어야 할 시행체가 결정한 최종 순위에 대해 경마팬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핵심인 것이다.
그동안 한국 경마와 시행체, 그리고 경마관계자들이 경마팬들로부터 얼마나 공정성과 신뢰성을 얻지 못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기에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 우리의 경마팬들은 수시로 터져 나오는 부정 경마 사건과 승부조작 사건 등으로 심한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열등감도 갖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왓어스퍼’ 낙마와 관련한 환불 소동, 순위변경과 관련한 경마팬 항의, 그리고 이번과 같은 순위결정에 관한 이의제기까지 시행체가 담당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아야 하는 분야에 대한 불신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경마시행체를 비롯한 마주,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 그리고 경마종사자들을 향한 경마팬들의 깊은 불신은 오랜 기간 동안 쌓여 온 것이며 또 그럴만한 이유도 충분히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제라도 경마관계자들은 이런 점들을 헤아려 자성하고 자정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선진 경마시행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더불어 개선, 발전해가야 하지만 경마시행의 공정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경주 과정과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뿌리깊게 박혀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우수한 경주마로 경마를 시행한다 하더라도 그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우수한 상품이 제공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공정 경마가 구현될 수 있도록 감시 기능을 맡아야 할 시행체, 좋은 말을 공급해야 할 마주, 경주마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조교사와 관리사, 최선의 승부로 경주 박진감을 높여야 할 기수, 정확하고 신속한 경마정보 제공으로 경마팬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할 경마전문지까지… 각 분야에서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은 나눠져 있다. 어느 한 분야라도 역할이 소홀하게 되면 경마팬의 경마시행에 관한 불신은 씻어지지 않을 것이다.
경마팬들도 지나친 피해의식과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한번 의심하고 의혹을 갖고 보게 되면 모든 게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를 나쁜 쪽으로만 귀결지으려는 태도는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당한 요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경마시행의 공정성 확보, 기본적이고도 시급한 과제지만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