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마장엔 추입마가 없다
한국경마 우승마의 대부분을 선행마가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진정한 추입마가 실종되고 있다는 의미다. 추입마가 양성되기 힘든 것은 경주마의 훈련 방식 외에도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기수들이 추입마에 기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기마일수록 특히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기마를 타고 선행에 나섰다가 입상하지 못하면 경마팬들에게 별로 욕을 먹지 않지만 추입을 시도하다 실패하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기 1위마면서 추입마를 탔다가 입상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기수는 이런 말에 다시 기승하게 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래서 추입마를 타고도 선행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수가 선행마를 타든, 추입마에 기승하든 전력질주를 하지 않았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인기마를 타고 선행에 나서 실패하면 용납 받을 수 있고 추입에 나서 실패하면 욕먹는 풍토는 바뀌어야 한다. 추입에 실패하더라도 전력질주 했다면 오히려 격려해줘야 한다. 경마팬들의 관전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입마가 사라지는 원인을 경마팬들의 관전태도에서 찾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마팬들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기마에 기승한 기수가 최선을 다해 말을 몰다가 추입에 실패하더라도 야유를 보내지 말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기수들이 다양하게 레이스를 전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사실 레이스가 멋이 있으려면 다양한 질주습성을 지닌 경주마들이 함께 출전해야 한다. 선행마들만 출전한 경주는 재미가 없다. 이런 경주에 레이스 작전이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런 경주는 망가지기 싶다. 출전마 14마리가 모두 선행싸움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도주마의 시원스런 도주와 선행마들의 선행 싸움, 종잡을 수 없는 레이스를 전개하는 자유마, 추입마의 멋진 역전극 등이 어우러진 레이스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경주가 편성되면 기수나 조교사도 레이스 전개를 다양하게 할 수 있고 작전도 다양하게 펼칠 수 있다. 이런 레이스가 만들어지려면 경주마의 질주습성을 잘 파악해 이에 맞는 훈련을 시켜 다양한 질주습성이 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경주마의 질주습성이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 대체적으로 단거리에서는 순발력 위주로, 장거리로 갈수록 지구력 위주로 훈련을 실시해 ‘단거리에서는 선행력, 중장거리에서는 추입력’을 키우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멋진 추입마가 나오지 않도록 돼버렸다.
대다수 경마팬들은 선행마의 시원스러운 질주도 좋아하지만 추입마가 펼치는 한편의 역전극에 더욱 많은 환호를 보낸다. 경주 내내 기회만 엿보다 4코너를 돌아 결승선 직전에서 엄청난 파워로 순식간에 다른 말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경마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더라도 다양한 훈련을 거쳐야 추입마가 양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마종사자들이 항상 염두에 둬야하며 경마팬들도 유연한 시각으로 레이스를 바라볼 때 경주마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병기 스포츠서울 부장


작 성 자 : 서병기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