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마공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초보 팬들은 역동적인 경주마의 질주를 통해 경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특히 우연히 자신이 베팅한 말이 맨 후미에 뒤 처져 있다가 막판 직선주로에서 화끈한 추입으로 치고 나와 간발의 차로 우승을 차지할 때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최고의 희열을 맛보게 된다. 뒤에 따라오는 두둑한 배당금은 경마를 통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전리품일 것이다.
이후 한동안 추입마의 매력에 빠져 조금씩 돈을 잃다보면 선행마들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심히 관찰해보면 추입마 보다는 선행마들의 입상률이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결국 경마는 선행마 놀음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는 순간 베팅솜씨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경마에서 추입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핸디캡이다. 후미에서 다른 말들의 흙탕물 세례를 받아가며 참고 있다가 막판에 치고 나올 때 행여나 다른 말들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을까, 혹은 진로가 막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추입이 진행되는 까닭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선행마들은 이런 경주방식에서는 대단히 자유로운 존재다. 그냥 앞서 나가서 열심히 뛰어주면 잡히든 말든 하늘에 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진마사 대천명(盡馬事 待天命)’이랄까.
이런 선행마들에게도 나름대로 천적이 있으니, 바로 추입마들일까? 아니다. 선행마의 천적은 같은 선행마들이다. 선행마들끼리 서로 선행을 나가기 위해 경합하는 행위는 자멸과 공멸을 부르는 신호에 다름 아니다. 일단 초반 경합이 되는 순간 바로 그 과정은 오버 페이스로 연결되며 막판 직선주로에서 현격한 능력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속칭 ‘말다리가 풀리는 모습’을 종종 목도하게 되는데 이 경우의 태반은 무리한 선행경합으로 인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능력 있는 선행마가 출전하면 다른 선행마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경합을 피하려는 일도 발생한다. 한국경마 사상 최다승을 거두며 장수하고 있는 ‘신세대’가 그 대표적인 사례. 사람으로 치면 불혹을 훨씬 넘기고 지천명을 바라보고 있을 노장마 ‘신세대’가 출전하면 다른 선행마들은 아예 선행을 포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신세대’와 동반 입상하는 마필은 초반 선두권에서 벗어난 추입마들이 많다는 것이다. 선입으로 ‘신세대’의 선행을 곱게 추격하는 것 자체가 보통 말들에겐 오버 페이스가 되어 버리는 까닭. 그래서 ‘신세대’가 나오면 뒤에서 힘을 꾹 참고 나오는 추입마들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경마가 선행마들의 무대가 된 것은 경주마의 훈련방식에서도 기인한다. 경주마의 주행습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만 후천적인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행마가 순발력 위주로 훈련을 받는다면 추입마는 지속적인 지구력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선행마의 순발력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도 스피드 훈련으로 기를 수 있는 반면 추입마의 지구력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요한다. 추입마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매일 40분 이상 경주로를 일정 속도 쉼 없이 도는 지구력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 서울경마공원의 새벽훈련시간은 경주마 1마리 당 평균 20분에 불과하다. 20분의 훈련시간으로는 능력 있는 추입마를 만들지 못한다.
마필관계자들이 경주마의 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주행습성을 개발하기보다는 편하고 금새 효과가 나타나는 스피드 훈련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요인이 결국 스피드 위주의 선행마 만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니 우승마의 대부분을 선행마들이 차지하게 된 측면도 있다.
서병기 스포츠서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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