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있을 대선을 앞두고 국가 전체가 술렁이는 가운데 경마장의 연말 분위기도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경마상금 협상이나 제도 전환을 두고 마사회와 경마관련 단체간 팽팽한 신경전을 펼쳐왔는데 올해 역시 앞으로의 전망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경마상금과 관련해 경마단체와 마사회의 가장 큰 쟁점은 정률제 시행에 관한 부분(마주협회), 초과 근로 및 휴일 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 부분(조교사협노조), 무리한 경쟁성 강화에 따른 각 경마단체의 부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수들은 과도한 경쟁에 시달린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경매와 관련해서는 마사회와 마주협회의 갈등, 마주협회 내부적 갈등으로 인해 주최측인 경주마생산자협회가 충분히 제 역할을 다 못함으로써 하자마 보상 처리, 경마장 입사 시기 지연 등 피해가 속출해 구매자, 생산자 모두의 피해의식을 부추기고 있다.
경마 창출자를 비롯한 관련 종사자들의 불만이 이처럼 고조되고 있는 것은 경마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태동이 불완전했던 한국의 경마시행 환경은 이후 80여 년의 시행 역사 동안 생산-육성-경주투입-생산으로의 재투자 등으로 이어지는 경마의 매커니즘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과도하게 경주 시행에 따른 베팅만 강조되는 기형적 양상을 띠게 됐다. 생산환경, 육성 기술, 투자 등에는 인색하면서도 매출액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경마의 도박적 측면만 과도하게 부각되다 보니 건전 경마가 채 자리잡지 못하고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해 국민과 정부의 압박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경마 매출액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함께 경마 인프라, 경마시행환경, 제도 등도 함께 성장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못해왔다. 이는 경마산업의 투자 환경을 좌우하는 경마상금이 충분히 책정되지 못해 생산-육성과 관련한 재투자로 이어질 수 없었고 이와 더불어 개인마주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해 선진경마시행국과 같은 마주의 역할이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상 공기업으로써 한국마사회가 갖는 한계와도 일맥상통한다. 단일시행체로써 여타 경마단체에 비해 과도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대신 정책적인 측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도 내실은 기할수 없는 현실로 이어져 온 것이다.
마사회는 최근 제2경마장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경마상금을 비롯한 고용체계, 경마제도 등에 상당한 변화가 따를 전망인 가운데 서울경마장 역시 제2경마장 개장을 기점으로 선진경마시행을 본격화하겠다고 마사회는 밝혔다. 하지만 마사회의 이같은 청사진 제시에 경마단체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경주당상금책정방식, 조교사의 관리사 개별 고용체계, 기수 프리계약제 선진 경마시행국이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제도에 대해 경마단체들이 반발심부터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경마의 지향점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경마산업을 둘러싼 여러 환경들이 선진국의 그것과는 동떨어져 있는데 그 종사자들에게만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 희생을 강요하라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것이 경마단체의 공통된 생각이다.
경마산업의 구조적인 갈등 요인,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때다. ‘이번 위기만 넘어가면 다음엔 어떻게 되겠지’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곪을대로 곪은 경마산업의 내부 상처가 치유되긴 어려울 것 같다.
우선 경마상금부터 바꾸자. 마주에게는 투자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종사자에게는 일한 만큼의 대가가 지불될 수 있도록 경마상금체계를 마련한다면 일차적인 갈등 요인은 해소될 수 있다. 경마종사자들은 매출액이 떨어져도 남의 일인양 시큰둥하다. 매출액이 오른들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과 단순 비교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생산현장에서 직접 상품(경주)을 만들어 내는 장본인들이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그만큼 경마종사자들이 결과에 대한 메리트를 갖지 못해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한국마사회의 민영화도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규제와 통제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효율적이고도 독립적인 경영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쳐낼 것은 쳐내고 벤치마킹할 것은 하도록 해 오랜 기간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마산업에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 정부와 시행체, 그리고 경마단체 모두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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