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97.4배는 나도 처음 터뜨려 보는 것이오!
처음 경마장에서 베팅을 하여 맞히기만 해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소위 경마장에서 말하는 999를 맞혔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당구나 골프 등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는 하는 장면이 걸어가면서도 떠오르고 사무실에 앉아도 떠오르고 누워있으면 천장에 그려지는 등 온통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떠오르곤 하듯이 경마장에서 999를 맞힌 팬들도 베팅한 말이 라스트에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고 한다. 그 만큼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999를 맞힌 팬들의 기분이 하늘을 날아 갈듯이 기쁜데 인기 없는 말을 타고 복승식 배당인 2등 안에 들어와 999를 터트린 기수의 기분은 어떨까? 나는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999를 터트리고 들어오면 기분이 아주, 매우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말을 갖고 들어와서 그런지 아무튼 기분이 삼삼하다.(?)
요즘 나의 경주 성적은 최하위다. 아주 최하위... 별 볼일 없는 말에 기승하기도 하지만 간혹 인기마에 기승하고도 2등 안에 들어오지 못하다보니 예시장에 나가면 팬들이 “홍대유는 언제 가야고!” 언제 들어 올 것이냐며 애타게(?)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먹고 사냐고 묻는데 나는 그때마다 그냥 씨∼익 웃어 줌으로써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토요일날 ‘형통’을 타고 예시장에서 윤승을 한다. 한 중년의 아주머니가 이번 한번 쏘는 거지...하며 농담 섞인 화이팅을 외친다. 다른 때 같으면 화이팅 해주는 팬에게 씨익 웃어 줄텐데 나는 그냥 윤승 만을 했다. 화이팅을 듣고는 내가 기승한 ‘형통’은 최고 인기가 없는 말이기에 잘 기승해 5등 안에라도 들어와 순위상금이라도 벌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기승했다. 조교사도 잘 타서 등수 안에 한번 들어와 보라고 한다.
‘형통’은 처음 출전 때도 내가 기승했는데 네다리가 따로따로 움직일 정도로 엉망으로 뛰었던 기억이 난다. 스타트가 늦어 맨 뒤에서 몰며 앞의 무리와 붙으며 안쪽으로 경주를 펼치다보니 꼴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라스트에서 순위 안에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온다. 앞의 두 마리는 이기지 못할 것 같지만 3등은 올 것 같아 열심히 몰고 때리며 결승선을 골인 하며 3등은 온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았다.
3등을 했기에 ‘형통’이 생각보다 많이 뛰어 주었다고 생각하며 후검량을 하는데 심의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심의 대상이 2등으로 들어온 ‘저스트원’이라고 하며 기수들은 내가 2등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조금 후 심의 결과 2등 온 ‘저스트원’이 순위변경 되어 내가 3등에서 2등이 된 것이다. 비록 순위변경에 의한 어부지라로 얻은 결과지만 나는 3등 상금이 아니라 2등 상금을 받게돼 기분이 좋은데 배당판을 보니 배당이 소위 999인 697배인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터졌다!!! 내가 지금껏 기수하면서 터뜨린 배당 중 최고인 것이다. 배당판을 보면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았다.
경마가 끝나고 아는 팬들이 제대로 한 건했냐고 농담을 건넨다! 697배 한 건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까?
경마장에서 999 한번 맞히는 것이 소원이고 999를 맞히면 그 기쁨은 최고라 하는데 이런 999란 표현은 어떻게 해서 경마장의 은어로, 또 경마장의 히어로로 통용이 되게 됐을까?
과천 경마장에서는 배당률을 알리는 전광판이 백 배 이상의 배당이 나와도 정확하게 수치가 표시되고 있다. 이번 ‘형통’의 경우처럼 697.4배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는 것을 말하는데 과거 뚝섬경마장에서는 배당률을 알리는 전광판이 세 자리 수밖에 표시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소수점이하 한자리수부터 10단위까지만 표시되고 1백 배 이상은 무조건 999로만 전광판에 표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1백 배 이상 즉 고배당이 나오면 ‘999’로만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즉 뚝섬에서는 ‘형통’의 697.4배당이 전광판에는 999로만 표시됐을 거라는 얘기다.


작 성 자 : 홍대유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