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가 갑작스럽게 얼어붙고 있다. 최근 1∼2년 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내수도 심각한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미-이라크 전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국제정세 불안, 잇단 테러 사태, IT산업의 불확실성에 따른 세계 경제 동반 몰락 등 각종 악재가 겹친데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투기 방지 대책, 신용카드 돌려막기 금지 등 각종 정책이 발표되면서 주식, 부동산 등 경기지표들이 동반 하락 추세다.
경기침체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경마는 어떠한가.
IMF의 불황을 무사 통과했던 경마산업 역시 최근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매출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라며 가볍게 넘겼던 많은 경마관계자들도 매출 저조 추세가 장기화되자 이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있다.
올 1월부터 지금까지 매출액 추이를 살펴보면, 1일 11개 경주가 시행됐던 1월을 제외하고는 매월 평균 토요일 710억 원∼760억 원, 일요일 840억 원∼880억 원 선이었다. 특히 지난 여름 휴장을 앞둔 야간 경마 기간 동안에는 하루 최고 9백억 원, 월 평균 8백억 원 대의 높은 매출 신기록을 이어갔으며, 추석 휴장 전에도 1일 9백27억 원의 매출 신기록도 작성해 단일 경주 1백억 원, 하루 1천억 원 매출액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천정부지로 오르기만 할 것 같았던 경마 매출액이 이상 기류를 타면서 최근 걷잡을 수 없는 바닥세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이다. 추석 휴장 직후 열린 9월 마지막 주엔 8개월 만에 최저치인 하루 매출액 5백억 원대를 기록하더니 10월 들어서는 이같은 추세가 굳어져 토요일 평균 6백억 원, 일요일 평균 7백억 원을 갓 넘기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마사회가 발표하는 입장객 수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아 입장객 발표의 신빙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경마공원 및 전국 28개 지점의 경마전문지 판매인을 비롯한 매점 운영자들은 입장인원이 현격하게 줄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또 최근에는 사설경마가 부쩍 늘어나 매출액과 입장인원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경마전문가들은 한국경마산업이 사양화 길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성급한 진단도 내놓고 있다.  
채 꽃도 피워보지 못한 채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선진 경마시행국들이 겪어 왔던 사양길에 벌써 접어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경마는 아직까지도 생산-육성-경주시행-마권발매-생산 등으로 이어지는 경마산업의 정상적인 사이클이 형성되지 못했다. 경주마 생산 육성 기반도 확립되지 못해 세계 시장에 내놓을 만한 국산마 한 마리 생산하지 못했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경마시행을 위한 환경도 조성되지 못했다. 경마팬 입장에서는 세계 최저 수준의 환급률을 비롯해 다양하지 못한 마권 종류, 상한선 등으로 인해 베팅의 묘미를 살려보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경주질도 저급한 수준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매년 20%∼30%의 성장을 이어온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이상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뀐 것이다.
경마팬들의 환급률 인상 운동, 경주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왔을 때도 애써 모른척 했던 마사회와 경마단체, 그리고 경마관계자들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주말이면 경마가 열리고, 경마가 열리면 경마팬은 모여들 것이라는 오래된 관습같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성인레저산업과 비교할 때, 지금의 경마는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브리더즈컵, 캔터키더비, 두바이월드컵 같은 환상적인 레이스를 바라는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한국의 경마산업 앞에는 내리막 길만 남게 될 것이다.
승식 다양화, 환급률 인상, 효율적인 경주 편성 및 우수마 생산·도입을 통한 경주질 향상, 경마종사자의 서비스 마인드 확대, 공정경마시행 통한 사회 이미지 제고, 군체계를 비롯한 불합리한 제도 개선, 국제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마산업의 민영화 통한 경마시행환경 개선 작업 등이 서둘러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경마에 더 이상 비전은 없다.

【편집국 차장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