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들이 레저 스포츠를 즐길 때 실력차가 나면 동등한 조건에서 승부를 가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100타를 넘기는 초보 골퍼가 싱글 골퍼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골프나 바둑, 당구 등 각종 레저 스포츠에서는 ‘핸디캡’을 부여해 서로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만들어 즐긴다.
경마는 이런 레저 스포츠와 성격은 다르지만 자신의 실력에 맞는 베팅을 즐길 수 있도록 승식의 선택 범위를 넓혀주어야 한다.
초보 경마팬부터 ‘경마 9단’까지 복승식이라는 한 개의 승식에 돈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경마 9단’이 초보자의 돈을 따먹는 그런 구조여서는 곤란하다. 마권의 종류가 다양해져야 하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마의 묘미를 배가시키고 한탕주의 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도 마권 종류의 다양화가 필수적이다.
서울경마공원에서 시행중인 마권은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일부 경주에 국한) 등 4종류 뿐이다. 그러나 미국과 뉴질랜드, 홍콩 등 경마 선진국은 적게는 7종류에서 많게는 16종류의 마권이 판매되고 있다. 다양한 마권을 판매함으로써 경마팬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마권을 자유롭게 구입한다. 따라서 아주 낮은 배당에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배당률이 발생, 다양하게 경마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심지어 적중되지 않은 마권(일련번호가 적혀있음)을 대상으로 다음주 수요일쯤 추첨을 통해 상품을 주고 있어 경마팬들은 적중되지 못한 마권도 경마장에서 버리지 않는다.
미국은 단승식을 기본으로 해 연승식의 종류도 출전 두수에 관계없이 2위 이내의 경주마를 적중시키는 마권과 3위 이내를 적중시키는 방식이 있다. 또 1위와 2위마를 순서에 관계없이 적중시키는 마권, 1∼3위마를 역시 순서에 관계없이 적중시키는 마권, 1위와 2위를 순서대로 적중시키는 마권, 또 1∼3위마를 순서대로 적중시키는 마권, 몇개 경주에 걸쳐 1위마를 연속적으로 적중시키는 마권 등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캔터키주는 같은 날 지정된 6개 레이스의 1등을 모두 맞히는 6중승식(Pick6)도 있다.
홍콩은 마권의 종류가 무려 16가지나 된다. 이 가운데 ‘트리플 트리오’와 ‘트리플 티어스’는 당첨자가 나올 때까지 베팅한 돈을 환불하지 않고 다음 날로 이월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따금 천문학적인 배당이 터지기도 한다. 연속 3개 레이스의 1,2,3위마를 정확히 적중시키는 ‘트리플 티어스’에서 120억원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최근 발생했다. 당첨자가 없어 며칠 동안 불어난 배당금을 한번에 싹쓸이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각개번호와 묶음번호로 분류, 다양한 마권을 판매하고 있다. 묶음번호의 마권은 적중이 쉬워 배당률이 낮은 반면 각개번호의 마권은 배당률이 높아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마권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마권의 종류가 단순하다보니 한탕주의를 부채질해 승부조작 시도 등 경마부정이 빈번했다. 또 경마정보가 제대로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우승마 예상방식이 과학화돼 적중률은 높아지고 배당률은 낮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부 경마팬은 배당률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경마가 재미없다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배당률이 낮은 것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배당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적중시킨 사람이 많다는 증거이고 또 돈을 잃은 사람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적중시키기 쉬운 레이스가 많아지면서 일부 팬들이 고액배당을 노리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경주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마권의 종류를 다양화하는 것이 경마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민주주의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다양성이다. 종류가 많은 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서병기 스포츠서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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