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은 승부의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

장마때보다 더 많은 배가 내렸다. 비가 많이 내렸을 때에는 추입마 보다 선행마나 선입마가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경주로 함수율 중 포화(15∼19%) 상태는 말발굽에 모래가 붙었다 떨어지는 상태다. 손으로 쥐면 물기가 스며 나오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때 선행하며 달리는 경주마는 모래를 뿌려대면서 뒤쫓아오는 추입마에 고스란히 모래를 뿌려 추입마의 역주에 방해를 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포화 상태에서 빠른 기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경주로에 수분이 없을 때는 어떨까. 필자는 건조한 주로에서도 선행마가 추입마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가고 있다는 것이 오랜 관전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경마세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고정관념 중 하나가 ‘거리가 늘수록 추입마에게 유리하고 거리가 짧을수록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적인 특성에서 더 명쾌한 논리는 ‘거리가 늘어도 선행마가 유리하고 짧은 거리일수록 더욱 선행마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1400m에서 번번이 늦추입으로 아쉬움을 남긴 말이 1800m에 출전한다고 해서 바로 우승을 넘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추입이란 레이스 초·중반 페이스 조절로 힘을 아껴뒀다가 막판 4코너 이후 그 힘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400m 늘어난 거리를 뛰다보면 힘을 비축하기는커녕 추입할 힘을 조금씩 소모할 수밖에 없는 까닭에 평소의 뒷심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추입 능력의 척도로 알려진 3F 기록을 보면 최단거리인 1000m에선 38초대의 기록이 쉽게 나오지만 2000m에는 41초대가 태반이다. 즉 거리가 늘수록 추입력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많은 팬들이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놓는 매력 때문에 추입마들을 선호하지만 엄밀히 따져 추입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핸디캡이라 봐도 무방하다. 막대한 돈이 걸린 승부에서는 안전하게 먼저 나가서 안전하게 들어오는 것이 최고의 선(善)이다. 경마팬들의 입장에서도 베팅을 이기기 위해선 선행마를 뽑아내는 것이 제1의 과제다. 선행은 곧 승부의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일 수도 있다.
요즘 과천벌을 휘젓고 있는 외국산 개별 구매마들도 하나같이 선행력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데뷔전에 추입 작전을 구사했더라도 얼마 후면 본색(?)을 드러내며 단독선행으로 필승을 거둬내는 코스를 밟는다.
선행이란 곧 하나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7월6일 토요경마 제9경주에서 ‘통일천하’는 기가 막힌 스타트를 받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내 ‘차지유어글래스’에게 선행을 ‘양보’했다. ‘통일천하’는 입상에 실패했고 공교롭게도 이날 선행에 나선 마필은 10개 경주에서 입상에 성공했다.
지난 7월 21일 마사회장배 경마대회를 승리로 이끈 ‘쾌도난마’도 선행작전을 구사했다. 야간경마는 더욱 선행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복병마의 추입보다 더 무서운 것이 복병의 기습 선행이다. 따라서 999가 터져도 선행으로 터질 공산이 더 크다.
초보 경마팬들 일수록 추입마와 선행마 2마리가 동시에 배당판에서 바람이 불면 선행마를 단승식으로 선택하는 것이 경마를 이기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작 성 자 : 서병기 eheek@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