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어 발생한 악재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경마공원을 흐려 놓고 있다.
무르익는 봄 기운과 함께 이번주에는 화사한 벚꽃축제가 열릴 예정이지만 시행체도, 경마종사자도, 그리고 경마팬도 경마공원을 찾는 몸과 마음이 무겁기만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한국마사회 구조조정용 ‘살생부’ 문건 파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주에는 또다시 기수협회 관련 소식이 경마장 분위기를 한층 얼어붙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마장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흡사하다. 그 중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 부족은 모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폐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행체에 대한 마주협회, 조교사협회, 기수협회, 생산자협회 등 관련 단체의 불만, 경마단체 및 그 종사자에 대한 경마팬의 불신 등은 경마 시행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경마종사자와 계층에도 불구하고 경마장에서 기수는 일종의 대표성을 지닌다.
즉, 경마팬의 욕구와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경주 결과가 발생했을 시 그 지탄의 대상은 조교사나 관리사, 마주 등 관계자가 아닌 바로 경주에 직접 출전한 기수가 되고, 반대로 기대 이상의 결과로 이어질 때에는 기수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간다.
그만큼 경마시행에 있어 기수의 역할은 큰 것이며 기수에게 모아지는 관심과 기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수를 경마의 꽃이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경마산업의 풍토는 기수를 공인으로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이는 그동안 부정으로 얼룩졌던 80년 경마시행의 역사 속에서 기수들 스스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적극적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되면 내 덕, 잘못되면 남의 탓’을 하는 경마팬들의 보편적인 정서도 크게 한 몫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된 것이며,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서로에 대한 신뢰 회복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수는 공인으로서 품위와 명예를 스스로 지켜야 하고, 경마팬을 비롯한 경마관계자들은 기수를 공인으로 인정해주며 그들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
흔히들 한국 경마에 문화는 없고 베팅만 있다고 한다. 문화가 없기 때문에 스타도 없는 건지, 선도적으로 이끌어줄 스타가 없기 때문에 경마문화 역시 싹 틀 수 없었던 건지… 하지만 이제 보다 성숙한 경마문화를 정착시키고 선진경마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사회는 공정한 경마시행과 경마팬 서비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생산자는 좋은 말을 생산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마주는 우수한 말을 도입해 경주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조교사는 최상의 상태로 경주마가 경주에 임할 수 있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하며, 기수는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매 경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경마팬은 결과에 수긍하면서 우승한 기수와 조교사, 마주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경마문화가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질타와 헐뜯기로 서로를 상처 내는 대신 응원과 격려, 믿음으로 선진 경마의 큰 바다로 나가야 할 때다.


작 성 자 : 이희경 pinklady@krj.co.kr